뱃사공은 내 사정을 모른다

GSnJ 이사장 이 정 환

  대문을 아무리 열심히 지켜도 뒤편에 쪽문이 열려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데 밤새 대문만 지키고 있다면 어리석다고 할 것이다. 쭉정이 홍단 패를 들고 있다가 피박을 쓰면 웃음거리가 되고, 봄이 오면 녹아버릴 강물을 바라보며 노심초사하느라 녹아버린 다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안타깝다 할 것이다. 나의 두려움 때문에 더구나 실체가 분명하지도 않은 두려움 때문에 모두가 가야할 길을 못 가게 되면 두고두고 원망 들을 일인데 이를 헤아리지 못하면 답답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러 곧 농산물 분야에서도 고위급 회담이 열리고 머지않아 최종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 오고 있다. 반대만 하다가 배가 떠나 버리면 정작 중요한 것은 못 챙길 수 있다. 뱃사공(정부)이 챙겨 주리라고 기대하지만 사공은 내 사정을 나처럼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반대를 외치더라도 한편으로는 하나하나 치밀하게 따져 챙길 것은 챙기고 버릴 것은 버리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절대로 내줄 수 없는 것을 정해야 한다. 이것저것 다 챙기려다 알짜는 놓치고 쭉정이를 붙드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진지하게 자문해 보자. DDA에서 어차피 감축될지도 모를 관세율을 지키는 데만 급급하고 있지는 않는지. 도하개발아젠다(DDA)가 타결되면 소용없어질 관세할당량(TRQ)관리제도에 집착하고, 큰 실효성 없는 가격기준 특별긴급관세(SSG)발동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는지. 국제수역국(OIE) 판정에 따라 수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를 뼈조각 쇠고기의 수입 반대에만 집착하여, 그 이후를 제대로 논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한 한쪽에서 혼합분유와 조제버터가 거의 관세를 부담하지 않고 들어오고 있는데 분유와 버터의 관세만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관세가 철폐되면 수입가격이 얼마나 낮아지고 국내산 가격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따져보는 노력보다는 관세율 유지에만 온힘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관세감축을 막으려고 할당관세(TRQ) 물량을 늘려 주어 수입 증가를 도리어 촉진하는 것은 아닌지. 농산물 때문에 더욱이 소고기 때문에 한미자유무역협정이 결렬될 경우 두고두고 결렬의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요컨대 이해 당사자들과 정부는 전문가들과 더불어 우리가 붙잡고 있는 패의 실질적 가치를 냉철하게 계량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협상이란 서로의 이익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어야 타결된다. 따라서 미국에게 우리의 피해가 많다고 주장하기보다 우리에게 가치가 낮은 패를 잘 가려 상대방에게 그 가치를 충분히 설명하여야 한다. 패의 실질적 가치를 정확히 계산하여 버릴 패와 지킬 패를 잘 고르는 편이 승자가 될 것이다.

  모두가 패를 고르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분명한 농가소득 안정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진부한 구조개선과 경쟁력 향상 대책이 아니라 농가소득 감소의 위험을 제거하는 정책 말이다. 그런 대책의 발표는 빠를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