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보전제도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

GSnJ 이사장 이 정 환

 정부가 한미FTA대책으로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면 이를 보전하여 주는 이른바 농업소득보전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한 후, 언론과 전문가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정부가 농업구조를 개선하고 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 돈을 써야하는데 퍼주기로 농민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일에 급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 대책안을 보면 면적당 조수입이 20% 이상 감소한 경우에만 85%를 정부가 보전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가격하락으로 조수입이 20% 감소하면 소득은 적어도 30%, 많게는 70%까지 감소하여 농가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는데도 이 제도는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국책연구소들의 예측에 따르면 한미FTA로 가격이 20% 이상 떨어지는 농산물이 없으므로 이 ‘퍼주기’가 실제로 실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도대체 정부는 왜 이런 정책을 들고 나와 퍼주기 비판을 자초했을까?  

  아마도 정부는 이 제도가 고령농가를 온존시켜 농업의 구조조정을 저해하지 않을까, 소득보전액이 WTO의 보조금 한계를 초과할 만큼 늘어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듯하다. 그러나 국책연구소들이 이제까지 예측한 피해규모에 의하면 정부가 가격 하락분을 100% 보전하여도 보전액이 그렇게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한 미국과 유럽은 이미 수십년간 이런 제도를 착실히 시행하면서 가장 성공적으로 구조조정과 경쟁력 향상을 달성하였음을 주목해야 한다. 정부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이 제도가 도리어 구조개선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구조개선과 경쟁력 향상은 농가가 새로운 투자를 하고 규모를 확대해야 이루어진다. 그런데 1990년대에 급성장한 시설채소 농업 중 정부의 지원을 받은 면적은 6%에 지나지 않았고 경영규모를 확대한 농가의 7%만이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았다. 요컨대 경영규모 확대와 시설투자는 정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농가 스스로의 결단과 힘으로 달성된다는 것이다.

   농가의 이런 선택과 결단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적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농가는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앞으로 미국 농산물이 무관세로 수입되면 농산물 가격이 얼마나 떨어질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와 농민단체는 한미FTA가 체결되면 한국농업은 끝장이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미래가 이렇게 불확실하고 불투명한데 누가 규모를 확대하고 신규투자를 하겠는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투자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농업이 내부에서 스스로 무너져 버리게 할 수도 있다. 1990년대 후반 쇠고기 시장개방을 앞두고 불안감에 휩싸인 한우 농가들이 앞 다퉈 암소까지 도축한 결과 시장이 개방되기 전부터 소 가격이 폭락하고 사육두수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관세철폐 자체보다 농가의 불안감과 과민반응으로 시장이 요동치고 이것이 농업에 더 큰 타격을 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설사 농산물 수입이 급증하더라도 그 충격이 일시에 농가를 덮치게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고, 그것이 소득보전제도이다. 그런 약속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여 농가가 과민반응을 자제하고 스스로 투자를 결단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줄 것이다. 명목소득이 보전되더라도 농가가 현재 정도의 상대소득 수준을 유지하려면 물가상승과 국민소득 상승률만큼 매해 새로운 소득기회를 만들어 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도전을 감당해야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