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 전국을 강타해 살처분된 가축이 300여만마리를 넘어서고 경제적 손실이 수조원을 넘었다. 방역작업에 몰두하던 공직자가 7명이나 목숨을 잃었고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협 받고 있다. 앞으로 지하수 오염 등 환경문제도 심각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충격은 물론, 축산 농가들은 불안과 공포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구제역은 재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재앙 앞에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책임추궁이나 비판보다 구제역을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킬 수 있도록 힘을 합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재앙이 그저 재앙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이 재앙을 새로운 발전의 계기로 삼을 것인가를 지금부터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런 뜻에서 2001년 우리나라 못지않은 구제역 재앙을 맞았던 영국의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교시해 주고 있다.

영국도 2001년에 구제역 방역에 실패해 무려 392만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하고 겨우 진정시키기는 하였으나 국가적으로 막대한 경제적, 환경적 손실을 입었고,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충격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토니 블레어 수상이 이끌던 당시 영국 정부는 그 가공할 구제역이 진정되기 시작할 무렵인 8월 세개의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였다. 　

그 첫째는 ‘2001 구제역 파동의 교훈 조사위원회’로서 가축질병에 대한 정부의 위기관리체계를 검토하고 새로운 방역지침을 수립하는 일을 담당하도록 하였고, 두번째 위원회는 ‘가축전염병 조사위원회’로서 바이러스의 확산경로와 백신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두 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따라 백신사용을 극도로 억제하던 유럽연합(EU)과 영국의 방역정책이 백신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세번째 위원회로서 ‘농업과 식량의 미래에 관한 조사위원회’인데, 여기서는 과연 영국의 농업과 식품문제를 장기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검토하는 책임을 맡았다. 이 위원회는 다음 해 1월29일 “지속 가능성, 다양성, 적응력이 있는 농업을 위한 새로운 전략” 이란 주제의 역사적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를 역사적이라 하는 것은 농업이 생산성을 넘어 환경과 농촌경제의 필요를 충족하고 식품산업과의 연결성을 높여야 한다는 영국농업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 답신을 받은 정부는 3월부터 다양한 현장 조사와 청문회를 거쳐 12월에 “지속 가능한 농업과 식품산업을 위한 전략”이란 새로운 농업·농촌·식품정책을 발표하였다. 이것이 그 후 영국농업과 농정을 환경, 동물복지, 안전성, 농촌경제, 식품산업과 농업의 연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기본 지침이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영국의 구제역 재앙은 새로운 출발의 계기가 되었다. 우리도 이번 재앙이 담당자 몇사람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농업과 농정에 대한 우리 모두의 인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임을 성찰하고, 농업의 비전과 정부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그 많은 비용과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