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의 혹독한 시련을 딛고 축산농가들은 이제 재입식을 서두르고 있다. 정부는 ‘방역체계 개선 및 축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농가들이 그 끔찍했던 시련을 딛고 재기를 서두르는 것은 다행한 일이고 정부가 다시 축산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정책을 내놓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의 방안은 문제의 근본을 애써 외면하고 구제역이라는 현상만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정책목표가 ‘완벽한 방역체계 구축’에만 맞춰져, 방역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하겠다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왜 가축방역을 위해 그렇게 많은 노력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를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방역대책과 축산업 선진화는 이제까지의 축산업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번 구제역 재앙의 직접적 원인은 방역 실패 때문이지만 그 근본 원인은 이제까지 우리나라 축산업에 축적된 문제가 폭발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역과 축산 선진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과연 한국 축산업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묻고 싶다. 한국 축산은 왜 존재하고,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축산업은 당연히 존재해야 하고, 더 많이 더 싸게 생산하면 좋은 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번과 같은 재앙이 언제 어디서 다시 폭발할지 아무도 모른다. 　

축산업은 우리에게 불가결한 산업이다. 한우고기 가격은 호주산의 3배 내지 5배나 된다. 그것은 한우고기에 대한 소비자의 간절한 욕구가 있고, 그 욕구가 수입 쇠고기로 대체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돼지고기는 수입품의 대체성이 비교적 높다. 하지만 이번에 국내산 공급이 감소하자 가격이 급등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역시 수입품으로 전부 대체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축산은 농작물 생육에 불가결한 유기물을 공급해 농산물의 생산을 풍부하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축산업은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우리나라 축산은 연간 1000만t이 넘는 사료를 수입하고 그만큼 많은 양의 분뇨를 배출해 환경에 큰 부담을 주는 산업이다. 또한 구제역 발생국에서 한 해에 연 2200만 명이 입국하고 많은 인력과 물자가 유입되는 현실에서 한국 축산은 많은 방역비용 부담은 물론 질병재발과 살처분으로 커다란 사회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위험성을 항상 안고 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축산업은 누구나, 어디서나 할 수 있게 방치할 수 없고, 그래서 모든 축산업은 규제가 필수적이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축산을 하느냐에 따라 환경과 방역에 치명적 영향을 준다.

허가제냐 등록제냐를 놓고 논란이 있지만 어느 것이 되었든 축산업은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필요와 경제·사회·환경적 비용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규제가 불가피하다. 요컨대 축산업은 지역별 분뇨 총량제, 더 정확히 말하면 양분 총량제, 그리고 방역을 위한 사육밀도 상한제 같은 규제를 전제로 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축산업에 대한 규제가 축산업을 억압하려는 것이 아니라 축산업이 지속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것임을 공감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서둘러 새로운 정책을 만들려고만 하지 말고 축산업 선진화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그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