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논란만 거듭하던 농협중앙회 신경분리의 수레바퀴가 드디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연 이 수레바퀴가 농협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불안하기만 하다. 농협 경제사업의 비전이 아직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농협이 신용사업에 매몰되어 경제사업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고, 그래서 조합원의 농산물 판매활동을 제대로 못한다는 소박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농협의 신경분리는 농업계의 숙원 같이 회자되어 왔지만 사실 그것은 ‘조합원의 생산물 판매’라는 농협의 본래 역할이 부진한 데 대한 상징적 요구였지 그 자체가 해답은 아니라는 것은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농협중앙회 산하 경제지주사가 많은 자본금을 지원 받아 경제사업 활성화에 성공하면 거대한 농산물 판매기업집단으로 성장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업의 성과를 조합원에게 공정하게 분배하는 지배구조가 확립되지 못하면 경제지주사와 조합원의 이익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이사회에 조합장이 몇명 포함되어서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조합원의 이익보다 조직의 성장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임직원의 조직논리 속성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설사 그런 방법이 있더라도 경제지주사의 사업은 많은 경우 특정 조합의 판매사업과 경합하여 해당 조합원의 이익과 충돌할 수 있고, 그런 경우가 많을수록 경제지주사의 존재이유가 도전 받게 될 것이다. 결국 경제지주사는 성공하였지만 언젠가 경제지주사 분리 주장이 조합에서 대두될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지역조합 중심으로 경제사업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조합이 너무나 영세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조합원이 극도로 이질화되어 있다는 현실이다. 　

그 결과 판매사업보다 환원사업에만 관심을 갖는 조합원이 더 많아 조합의 판매사업이 발전할 수 있는 기본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조합합병이 추진되어 왔지만 합의 도출이 어려워 진행이 지지부진할 뿐만 아니라 조합원의 이질화를 더욱 부채질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제 남은 방법은 조합의 범위를 뛰어넘어 이익이 일치하는 동질적 조합원 중심으로 판매사업을 전담하는 조합공동사업조직을 만들고, 중앙회(혹은 경제지주사)는 사업성을 평가하여 여기에 필요한 자본을 우선출자 방식으로 투자하여 힘을 보태는 것이다. 　

공동사업조직은 수개의 조합이 참여하는 시·군 단위 조직이 될 수도 있고, 도 단위 혹은 전국 단위 조직이 될 수도 있어야 하며, 사업교환 방식으로 전문성이 있는 특정 조합이 주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조직은 조합원의 출하 실적에 따라 의결권을 배정하고, 또 필요에 따라 중앙회가 일부 의결권을 행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조합공동사업법인 혹은 연합사업이란 이름 아래 이런 류의 시도가 있었지만 발전을 가로막는 법적·현실적 제약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이제 정부, 농협중앙회, 조합, 조합원이 힘을 합쳐 그런 제약을 해결하고 이런 조직을 하나둘씩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만이 농협이 진정한 조합원의 판매조직이 되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