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쌀 산지유통은 수확기보다 다음해 단경기에 가격이 더 높아지는 이른바 계절진폭에 의존해 왔다. 따라서 적어도 금리와 감모, 그리고 적정한 이윤이 나올 만큼의 계절진폭이 있어야 쌀의 유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계절진폭은 시장에서 사후에 결정되므로 적정수준보다 크거나 작은 경우가 다반사이고, 농가와 조합의 희비는 해마다 엇갈린다. 결국 수확기에 되도록 싼값에 사서 계절진폭의 이득을 취하려는 조합과 이에 저항하는 농가가 서로 갈등할 수밖에 없고,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의 실체를 보아야 한다. 　

 수확기 가격이 지나치게 하락하면 다음해 단경기 가격이 이보다 많이 상승하고, 그만큼 조합은 이득을 얻지만 농가는 손해를 본다. 그 결과 다음 수확기에 조합은 많이 사려 하고 농가는 팔기를 꺼려 수확기 가격이 수급실세 이상으로 상승하기 십상이다. 그러면 다음해 단경기 가격이 수확기보다 낮아지는 역계절진폭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번엔 벼를 사서 저장했던 조합이 손해를 보게 되어 다음 수확기에는 매입가격을 낮추거나 매입물량을 줄여 적자 위험을 피하려 하고, 농가는 조합에 매입량을 늘리고 높은 값에 매입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싸움이 벌어진다. 　

 탈출구는 정부다. 농협과 농가가 한목소리로 정부가 특별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하고, 정부가 해결사로 나서 작년과 같이 추가 격리라는 칼을 빼든다. 이 칼이 시장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실패하면 예산만 낭비하는 것이 되고, 반대로 너무 성공하면 다음해에 역계절진폭이 나타나는 역풍을 불러와 전형적 정책의 역기능이 된다. 요컨대 조합은 계절진폭의 이득을 얻으려 하고, 농가는 이를 주지 않으려는 게임을 하고 있다. 정부 역시 이 게임에 자의반 타의반 끼어드는 형국이다.

 그러나 게임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게 마련이므로 어느 쪽인가는 손해를 보아야 하고, 정부개입은 역효과를 불러오기 십상이다. 따라서 이제 농민도 조합도 계절진폭 따먹기에서 벗어나 상품화와 마케팅에 몰입하는 대안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매우 시급한 과제다. 　

 유일한 대안은 수확기에 모든 벼의 판매를 조합에 위탁하고, 조합은 자기 책임하에 가공·판매를 완료한 후 농가에 정산하는 수탁-공동계산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조합은 판매를 대행할 뿐, 계절진폭의 이득과 손실이 모두 조합원에게 귀속되므로 조합원리에도 맞는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정부가 이 제도를 적극 추진하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적절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과연 조합이 투명하게 정산을 할까, 판매사업을 지금보다 게을리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농협은 수탁제 아래서 정산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조합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농가도 이 방향으로의 개혁 없이는 쌀 유통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이해하고 이 변화를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선진국 조합의 농산물 유통이 대부분 수탁-공동계산 방식에 의존하고 있음은 이 제도가 이제까지 발견된 최선의 방책임을 말하고 있다. 정산이 어렵다거나 조합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회피할 일이 아니다. 이 방법 이외에 계절진폭이 널뛰기를 하고 수확기 쌀시장이 불안해지는 것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