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계기로 농업대책 논의가 한창이다. 22조원 규모의 투융자 지원을 한다더니 다시 플러스알파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매우 낯익다. 문민정부는 경쟁력을 향상시킨다고 42조원에 15조원 농특세사업, 국민의 정부는 45조원 사업, 참여정부는 경쟁력에 복지를 더해 119조원 사업을 한다고 야단법석을 하였다. 그런데 또 22조원 플러스알파라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농업은 돈 먹는 하마네’라고 실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싹하다. 　

 우리는 돈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이런 식의 반복된 대규모 투융자 소동으로 농업과 농업인들이 얼마나 비판받고 구박받았던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추진중인 사업비를 10여년치 모아 새로운 지원자금으로 포장하여 지원규모에 얼마나 거품이 많았던가? 또 지원금액의 상당부분은 융자금이어서 결국 농가가 갚아야 할 돈인데 농가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오해받지 않았던가? 지원자금을 소화하기 위해 수백가지 사업이 추진되고, 보조금에 현혹된 투자와 부실사업으로 언론에 얼마나 두들겨 맞았던가? 모든 지원자금이 효과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비판과 구박이 있었기에 다시 찾아온 투융자 이야기가 매우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가령 내년도 농식품부 사업계획을 보면 그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첫번째로 10년간 10조원을 농어업시설 현대화에 투입하겠다고 한다. 여기서도 10년치를 모아 엄청난 금액이 새롭게 지원되는 것으로 포장되었고, 이차보전에 의한 융자금인데 전부 농가 지원금인 것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연리 3% 정도의 이차를 보전하는 것이라면 연간 300억원의 이자를 지원한다고 발표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또 왜 하필 시설현대화에 10조원일까? 투자는 농가가 하고 그 빚을 갚는 것도 농가인데 정부가 투자대상과 규모를 정한 것은 무슨 뜻일까? 이제 필시 정부는 자금지원을 잘 관리하기 위해 지원할 시설의 종류와 규격을 정하고 대상자의 자격을 세세히 규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필요한 시설종류와 규격은 농가마다 다르고 적절한 대상자가 획일적 기준으로 정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시설현대화에 얼마를 지원한다’가 아니라 신용보증제도 등을 정비하여 사업자금이 필요한 농가가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금융기관에서 필요한 만큼 융자를 받을 수 있는 농업금융시스템을 정비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농산물을 100억달러 수출하고 종자산업을 육성하여 골든시드(황금종자·Golden Seed)를 수출하는데 총력 지원한다고도 한다. 그래서 누가 어떻게 얼마나 좋아지는 것일까? 달러를 벌어들여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외환위기 대응력을 높임으로써 경제안정에 이바지한다? 농산물 수출액이 총수출액의 1%도 안되는 상황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뭘까?

 이런저런 화려한 이야기보다 오륙십세가 넘어 다른 소득기회가 없는 150만명이나 되는 농업인의 삶을 어떻게 할지를 걱정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또 매일 맛있고 입에 맞는 농산물을 살 수 있을지가 걱정이고, 그 안전성이 교통사고보다 더 걱정인 소비자를 어떻게 안심시킬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한·미 FTA로 도대체 내가 생산하는 농산물 값이 얼마나 떨어질지 몰라 잠 못 이루는 농업인의 불안을 어떻게 덜어 줄지 고민하기 위해 정부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