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직불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이미 선진국 농정이 직불제 중심으로 되어 있음에 비추어 당연하고 또 바람직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을 보면 두려움을 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직불제 논의가 경제적, 도덕적 정당성은 외면하고 그저 늘리고 올리는 데만 급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대책으로 제시된 밭직불제에 대한 보도를 보면, 국내 생산이 필요한 19개 곡물 및 양념채소류를 재배한 밭에 1㏊당 40만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결국 생산보조금을 준다는 것인데, 이 보조금을 받는 작물의 생산이 늘어나 가격이 떨어지면 이 작물을 잘 재배하던 농가에 뜻밖의 피해를 줄 텐데 누가 책임질 것인가? 　

 생산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아무 효과도 없는 보조금을 그저 나누어 준 것이 되는데 그 책임은 또 누가 질 것인가? 한때 생산보조금 정책이 난무했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사라진 지 오래인데, 이런 직불제가 도입된다면 농정을 20여년은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논고정직불제가 있으니 밭직불제도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한·미 FTA를 계기로 정치권이 덥석 도입하기로는 했다. 그러나 예산 부족으로 일부 농산물에 제한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결국 그런 농산물에 대한 생산장려금이 된 것이다. 　

 밭직불제 도입의 이유가 되었던 논고정직불제는 논이 가지고 있는 다원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지 쌀 생산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토양침식을 막고 빗물을 저수할 수 있도록 논의 형상을 유지하면서 제초 등 필요한 관리를 하는 조건으로 기준연도에 논이었던 모든 농지에 벼 재배와는 관계없이 지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쌀 생산을 장려하는 생산보조금도 아니고, 논의 다원적 기능을 유지시킨다는 데서 지급의 정당성도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지급조건을 준수하는지를 더욱 엄격히 감시하고 비료와 농약 사용에 대한 제한도 강화하여 정당성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밭직불제도 어떤 특정 작물을 재배해서가 아니라 밭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높일 수 있도록 특별한 관리의무를 부과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서 지급하여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고 농산물 수급을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다. 가령, 어떤 작물이 재배되고 있는 밭이 다원적 기능은커녕 토양침식과 환경부하를 일으키고 있는데 직불금을 준다면 누가 그 정당성을 인정하겠는가? 더욱이 해당 농산물의 가격을 떨어뜨려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면 어떻게 그 타당성을 주장하겠는가?

 직불제를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는 스위스는 특정 작물 생산을 요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원적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용 및 관리방식에 엄격한 조건을 요구하고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직불제가 중요한 정책방향이긴 하지만 늘리고 올리기만 하면 좋은 것이 아니다. 어떤 지원정책이 도덕적 정당성과 경제적 타당성을 상실하면 결국 그 제도 자체가 지속가능할 수 없다. 직불제가 농정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제도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다는 것은 농정의 앞길을 가로막는 매우 걱정스러운 일임을 정부는 물론 농업인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