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애써 가꾼 농작물이 재해나 가격폭락에 휩쓸려 떠내려 가버리는 일이다. 기상이변이 빈발하고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시장개방이 급진전되는 상황에서 그러한 두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득보전과 보험제도를 통해 농가소득을 안정시키는 데 중점을 두겠다는 신임 농정 수장의 방향 제시는 적절한 것이다. 문제는 지난 정부에서도 이와 매우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식세계화, 농식품 100억달러 수출, 저수지 둑 높이기, 군 단위 유통회사 설립 등에 매달렸고, 농가는 지금도 변함없이 재해와 가격하락의 위험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새정부 농정은 농민들이 그 능력을 펼 수 있게 하는 데는 수많은 투융자 지원 사업이나 제2의 새마을운동보다 위험을 관리하는 제도가 훨씬 더 중요함을 통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최근 유통 문제가 또다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통령이 농협하나로클럽을 방문, 농산물 유통구조를 개혁해 생산자와 소비자 가격의 차이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이 비슷한 방식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대통령이 직거래를 강조하자 농협 직원이 탑차에 쇠고기·돼지고기를 싣고 아파트 단지를 누비고 정부청사 앞마당마다 천막을 치고 직거래 장터를 열었던 때도 있었다. 역사는 또 반복될 것인가？ 　

 중간유통 상인이 존재하는 것은 그들이 시장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없어지려면 그들이 담당하는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작동해야 한다. 가령, 말 많은 밭떼기(포전매매)를 없애려면 작황과 가격하락의 위험을 떠안아 주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소비지 대형 유통업체의 불공정 거래와 짬짜미에 의한 가격 상승은 정부의 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소멸할 것이다. 유통구조라는 그림자를 쫓지 말고 이 같은 현실이 존재하는 이유를 해소해야 한다. 　

 축산물 가격하락에 대한 대책도 뜨거운 쟁점이다. 수매한다, 수출한다, 할인판매 행사를 한다고 야단법석이지만 불과 1~2년 전, 돼지 사육마릿수가 한해 사이에 200만마리나 늘어나고 한우는 30만마리, 육계는 1000만마리나 늘어나 과잉을 향해 치달을 때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물가 잡으라는 대통령 말씀에 축산물 수입량을 늘리는 데만 몰두하지 않았던가. 또 관련 생산자 단체는 무엇을 했는가？ 가격상승을 그저 즐기지 않았던가？ 　

 축산물만이 아니다. 2009~2010년에는 쌀 재고가 넘쳐 주정용으로 처분하고 논에 딴 작물을 심으면 장려금까지 줬지만, 이제는 다시 부족대책을 세운다고 야단이다. 　

 10여년 전에도 과잉 후에 부족현상이 나타나고, 버려졌던 산비탈 논을 다시 일구는 트랙터 소리가 요란했던 적이 있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당장의 부족과 과잉에 매몰되지 말고 부족과 과잉이 발생한 원인을 찾아 과잉일 때 부족요인을 제거하고, 부족할 때 과잉요인을 제거하는 선제적 대응을 해야 한다. 　

 대통령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고 이런저런 정책을 지시하겠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농민단체에도 대리자 문제는 예외 없이 존재한다. 단체의 대표가 일반 농가의 이익을 정확히 대변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하지만, 현명하게 판단하고 때론 설득해야 한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농정수장이 대통령, 농민단체, 그리고 전문가와 그렇게 소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