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쌀 수매제를 폐지하는 대신 시장가격이 정부가 정한 목표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차액의 85%를 보전하는 쌀 직불제가 도입됐다. 한·칠레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거치면서는 어떤 농산물의 수입이 늘어나 시장가격이 정부가 정한 기준가격(직전 5개년 평균가격의 90%) 이하로 하락하면 차액의 90%를 농가에 직접 보전하는 FTA 피해보전직불제도가 생겨났다. 　

 이들 제도를 농가에 대한 퍼주기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농정의 중심이 됐던 제도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이들 제도가 더욱 중요해졌으며 그만큼 기대도 컸다. 　

 그런데 최근 제도의 운용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농가와 정치권은 직불제의 목표가격 또는 기준가격을 높이라고 요구한다. 반면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은 그렇게 하면 생산이 늘어나고 농산물 가격은 더욱 하락해 결국 재정부담만 계속 늘어나고 농가의 수취가격은 도리어 낮아지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반박한다. 　

 또한 목표가격이나 기준가격을 높여 직불금 지급액이 늘어나면 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이른바 감축대상국내보조총액(AMS) 한도인 1조4900억원을 초과, 이들 제도의 집행이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만약 정말 과잉생산을 초래하고 AMS 한도 때문에 집행이 어려워진다면 이들 제도는 농정의 중심이 될 수 없고, 우리가 이 제도에 걸었던 기대는 접어야 할 것이다. 정말 그런가？

 미국도 우리나라의 쌀 변동직불제나 FTA 피해보전직불제와 같이 농산물가격이 정부가 설정한 기준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차액을 보전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가격변동직불제(CCP, Counter Cyclical Payment)라는 것이다. 　

 그런데 CCP와 우리나라 제도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올해 해당 농산물을 재배한 면적에 따라 직불금을 지급한다. 이에 반해 미국의 CCP는 농지로서 보전되고 있는 한 올해 어떤 작물을 재배했는지를 묻지 않고, 심지어 휴경을 하였더라도 기준 연도 재배 작물과 면적에 따라 직불금을 지급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올해 재배한 작물, 그리고 그 면적에 따라 직불금을 지급하면 그것이 그 작물의 생산유인이 되어 과잉생산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이런 직불제도를 처음 도입했던 1970년대에는 우리나라와 같이 올해의 재배면적을 기준으로 지급했다. 그 결과 이 제도가 가격정책과 비슷한 생산유인이 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결국은 오랜 논란 끝에 1985년부터 지금의 CCP와 같은 방식으로 개편했고, 생산유발 효과가 거의 차단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CCP 방식의 직불제도는 올해 특정한 농산물의 재배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품목과 연계되지 않는 직불금이다. 그러므로 지급 총액이 농업총생산액의 10%를 초과하지 않는 한 이른바 품목불특정 최소허용보조가 돼 AMS에 산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WTO의 규정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두 직불제를 미국의 CCP 방식으로 개편하면 AMS와는 별도로 약 4조원까지 직불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된다. 　

 요컨대 이들 제도를 미국의 CCP 방식으로 개편하면 과잉생산 문제도, AMS 한도 초과 문제도 다 없어진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정말 국민과 농가를 위해 바람직한가?’만 따지면 된다. 이런 사실을 이미 여러 차례 말했음에도 똑같은 논란이 반복되고 있어 답답하다. 이번에는 모두가 귀 기울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