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발표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발전 기본계획’에는 ‘농업과 농촌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종래의 ‘묻지마’식 농정에서 한걸음 진보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른바 선택과 집중, 그리고 맞춤형 지원이란 종래의 틀에 갇혀 있다는 한계를 지녔다. 　

 가수 조용필은 가왕이라 불리는 입지임에도 64세 나이에 ‘조용필의 틀을 깨야 한다’며 전혀 새로운 음악을 시도했고, 그 음악에 10대부터 60대까지 열광한다. 농정이 진정 농민과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이제까지 농정을 가두어온 두가지 틀, 선택과 집중, 그리고 맞춤형 지원이란 낡은 둥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화옹지구의 동부팜한농 유리온실이 큰 농정 현안이 됐고, 앞으로 새만금 지역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대기업의 농업 진출에 대한 규제가 중요한 현안이 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이 빠지고 중소기업이나 농업법인 혹은 어떤 개인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기존 농가들의 시장을 잠식하면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대기업은 물론 누구라도 정부의 지원을 집중적으로 받는 것은 십중팔구 다른 농가의 이익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정부의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보장이 전혀 없고, 집중지원이 부실을 키우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따라서 종래의 ‘선택과 집중 지원’이란 방식으로 특정한 주체나 조직을 정책적으로 지원해 육성한다는 농정의 패러다임을 이제 폐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부의 시설지원 같은 것을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주라는 말이 아니다. 도리어 시설투자는 농가의 자율적 판단과 선택에 맡기고, 정부는 누구나 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금융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또 가격하락 대응 직접지불과 같이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모두가 받을 수 있는 위험관리 지원을 튼튼히 해서 농가의 투자위험을 줄이는 일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선진국은 정부가 특정 농가를 선택해서 집중 지원하기보다 정부가 해야 할 일, 시장에 맡겨 둘 수 없는 일을 선택해서 그 일에 집중한다. 이것이 농정개혁이고 농정선진화다. 　

 이제까지 농정의 또다른 중요한 패러다임은 농가를 특성에 따라 유형화해 지원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업농에게는 농업활동을 지원하고, 영세농이나 고령농에 대해서는 복지정책을 강화한다고 한다. 나아가 농가별로 맞춤형 지원을 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영세 고령농가도 농업을 지속하기를 원하고, 경쟁력을 갖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는데 농업정책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고 또 가능한가. 영세 고령농에게 농업을 포기시킬 특별한 복지대책이 있기도 어렵지만, 복지정책은 고령 영세농을 탈농시키기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되고 국민으로서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대농도 당연히 연금·의료·재해대책 등 모든 복지정책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또 농가별로 다른 여건과 희망을 가지고 있는데 정부가 120만 농가를 맞춤형으로 지원한다는 것이 가능하고 또 필요한 것인가. 이른바 농가를 유형별로 또는 맞춤형으로 지원한다는 것은 탁상공론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정부가 농가 하나하나를 관리한다는 발상은 던져 버리고, 일정한 시장기구와 안전장치만 마련해 농가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시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하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인식한다면 농정은 비로소 한단계 도약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