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인도에 가다8]

델리에서의 마지막 일정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델리는 볼 것이 많은 곳이다. 우리는 대부분 그냥 지나가며 외관만 구경했고 타고르의 기념도서관이 있는 라빈드라바반과 레드포트, 후마윤묘 등 몇 군데를 빠르게 돌아다녔다. 무굴제국 2대 왕인 후마윤의 묘는 이슬람 양식을 한 붉은 건물로 매우 아름답고 깨끗했다. 이곳은 정원식 가족묘로 140여명이 안장되어있다고 한다. 올드델리의 레드포트는 건축광이었던 무굴제국의 샤자한이 건립한 붉은 성인데 샤자한 덕분에 지구촌여행객들은 이렇게 호사를 하는데 외관만 보았지만 성곽 끝  먼 하늘을 보니 어쩌면 그 너머 바다가 있을 것 같다는  착

각이 들 정도로 신비스러운 자태이다. 올드델리의 자마마스지드 이슬람사원은 샤자한 치세 중 마지막 건축물로 버스에서 내려 사원으로 걸어가는 길엔 노점상들로  가득 차 있었다.

델리에 와서 정돈된 거리를 보니 어쩐지 인도 맛이 덜 난다했는데 여긴 정말 제대로 인도 특유의 소란스러움 속의 활기와 지저분함이 뒤엉켜 ‘올드’라는 말이 실감났다. 한  상점에는 장식을 박은 검은 사리가 유난히 많았는데 유달리 화려한 색감에 익숙했던 그간의 상점들과 다른 분위기에서 무슬림여성들이 주요 고객임을 알 수 있었다. 거리에서 만난 검은 옷을 휘감고 부르카를 쓴 골격이 큰 여성들의 강렬한 눈빛은 참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운 기둥들이 많이 있는 쿱타미나르 승전탑은 이슬람왕조가 힌두세력에 대항하여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곳으로 13세기 이슬람 건축의 걸작품으로 꼽히는데 마침 단체로 견학을 온 한 무리의 무슬림여학생들을 만났다. 초록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돌아다니니 활기가 넘쳐흐른다. 아마도 저 아이들 중에서 인도의 여성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인습과 종교에 의한 부당한 억압을 타파하자는 여성학자가 나올 지도 모를 일이다. 좀 더 시간을 두고 곳곳을 돌아다녀보고 싶은데 어서 나오라고 재촉이다. 그렇게 서둘러 갔건만 로터스템플(연꽃 사원)은 멀리서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연꽃 모양의 대리석 사원, 매우 아름답다는 칭송에도 불구하고 1986년에 완성되었다는 이 걸작은 내 눈에는 세월이 모자라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었다. 델리는 눈 먼 큰 애기 시래기 다듬듯 그렇게 설렁설렁 보고 지나왔는데 꼼꼼히 다녀볼 만한 곳이 많은 곳이다. 점심시간에 시내 공원 곳곳에서 여유롭게 쉬고 있는 공무원들의 모습에서 밤낮없이 바쁜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모습을 떠올렸고, 100년이 넘은 건축물에 손을 대려면 국가에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나라. 영국의 식민지통치의 잔재가 아직도 많이 보이는 나라의 수도, 뉴 델리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빠르게 지나갔다.

 어둠이 내리고 우리는 마지막 일정, 한국식당을 찾아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영국인들이 만들었다는 잘 정돈 된 카운티의 주택가였는데 나는 그 안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서 인도에서의 마지막 만찬으로 상치에 쌈장을 얹어 볼이 미어지게 밥을 먹었다. 열흘 동안 과일과 빵으로 연명하던 내게 모처럼의 한국음식은 절대적인 염분부족상태를 단번에 날려버린 유쾌한 일이었다. 여행의 또 다른 묘미가  음식기행 일 텐데 나는 일찌감치 그쪽은 포기한 사람이니 아마도 절반의 맛밖에 느낄 수 없는 여행임이 틀림없다.( 2부 끝. 제 3부 거리의 성자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