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nJ 농정전략연구센터 소장  고영곤

‘아름다운 우물’ 쇤부룬(Schönbrunn)궁전

  비엔나 도심에서 십 여리 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여름궁전을 찾았다. 이 궁전은 호프부르크 궁전이 본궁 또는 겨울궁전이라고 불리는 것과 대조를 이루는데, 황제들은 1713년 이 궁전이 세워진 뒤 여름에는 여기에 머물다가 더위가 물러가면 겨울궁전으로 돌아가곤 했다고 한다.

비엔나 판 베르사유라는 이 궁전은 프랑스와의 외교적 마찰이 지속되던 시기에 오스트리아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당초에는 베르사유를 압도하는 규모로 설계되었으나 재정상 현재의 규모로 세워졌고,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에 의해 5년간의 공사 끝에 1749년 오늘의 모습을 띄게 되었다. 1805년과 1809년 나폴레옹이 침략했을 당시에는 나폴레옹군 사령부로 사용된 적도 있다고 한다. 60만평의 광활한 토지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정원과 숲, 그리고 뒷날 ‘왕위계승전쟁’(1740-48)과 ‘7년 전쟁’(1756-63)이 끝나고, 평화를 회복한 기념으로 궁전 뒤편 드넓은 정원 건너 언덕위에 1775년 세워진 글로리테(Gloriette)를 포함하여 모두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왕위계승 전쟁’은 1740년 아들이 없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6세가 세상을 뜨고 23살의 장녀인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영토를 상속하자 프로이센 등 주변국들이 여성의 상속을 문제 삼아 일으킨 전쟁이었고, ‘7년 전쟁’은 왕위계승 전쟁으로 마리아 테레지아가 상속권을 인정받는 대신 슐레지엔지역을 프로이센에 넘겨주었는데 이를 다시 찾고자 벌인 전쟁이다.

  어떻든 쇤부룬 궁전은 바로크양식의 아름다운 거대한 건물로 1,441개의 방이 있는데 그 가운데 45개만 일반에게 공개된다. 관광객들은 이중 정해진 관광코스를 따라 정해진 방들을 구경하도록 되어 있는데 방 숫자가 많은 코스는 그 만큼 비싼 요금을 내야 한다.

  우리는 아마 22개의 방을 구경하는 코스를 선택했던 것 같은데 제한된 시간의 관광이었지만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방들을 더듬어 본다.

 먼저 1961년 동서 냉전이 한창일 때 미국 케네디 대통령과 소련의 후르시쵸프가 정상회담을 했다는 길이 40미터, 폭 10여 미터의 큰 방을 보았다.  왕실의 무도회장으로 사용하던 높이가 최소 4-5m는 족히 될 듯싶은 높은 천정의 화려한 벽화와 샹들리에가 인상적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5남 11녀의 자녀 가운데 막내가 태어나기 전에 그려진 15명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육아실도 있었다. 그 많은 자녀들이 거의 예외 없이 이웃 나라들과 정략결혼을 했다하니 핏줄에 얽히고설킨 세계사의 그물이 어지럽기 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오스트리아는 나치시대 히틀러와 손잡았던 것을 제외하고는 국제 외교에 있어서 가장 앞선 국가로 알려지고 있다. 비엔나에는 유엔 건물이 있고 북한 핵문제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공업개발기구(UNIDO), 팔레스타인 난민기구, 국제마약위원회 등 14개의 UN기구 본부가 위치하고 있다. 나치와 협력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까지 지낸 뒤 지난 6월에 타계한 발트하임 전UN사무총장도 오스트리아가 낳은 외교전문가였다.

모차르트와 가난한 예술가들

  쇤부룬 궁전에 걸린 15개의 초상화 중에는 비운의 왕비가 된 마리앙뜨와네트의 초상화도 걸려 있다. 6살의 모차르트가 이 궁전에 와서 황실 가족들 앞에서 연주를 하다가 실수로 넘어지자 달려와 모차르트를 일으켜 준 같은 또래의 소녀, 훗날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가 되었다가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그 소녀, 마리 앙뜨와네트. 모차르트는 앙뜨와네트가 자신을 일으켜주자 “고마워, 내가 크면 너와 결혼할거야.”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직까지도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비엔나의 중앙공원묘지에 있는 모차르트의 묘는 가묘라는데, 그는 35년이라는 짧은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비엔나에서 보내다가 이 세상에서의 가난한 삶을 마쳤다. 그는 비엔나에 사는 동안에도 열한 번이나 이사를 했고 집안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아내 콘스탄체와 춤을 추었다고 한다.

 비엔나에 사는 37년간 여든 번이나 거처를 옮길 정도로 빈궁하게 살았다는 베토벤, 역시 비엔나 출신이면서 “매일 잠자리에 들 때마다 다시는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일기를 남길 정도로 가난했던 슈베르트 등을 생각하면 위대한 음악가는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의 경제적인 부와 예술적인 업적과는 별개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저는 용기도 돈도 다 떨어졌습니다. 다락방으로 올라가 목에다 밧줄을 매야하나 하는 자괴감이 날마다 엄습해 옵니다. 저의 발목을 잡는 것은 오직 그림뿐입니다.”라는 고갱의 편지나 “언젠가 내 그림이 물감 값보다 더 나갈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지니고 살며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많이 그렸으나 그런 날은 보지도 못하고 자살한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내 고향 부안출신 신석정 시인의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로 생각이 이어졌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중략)..........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신석정 시인도 한 때 ‘서가의 책을 내다 종이장수의 저울에 넘겨야 하는지’를 괴로워하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고 하지 않는가. 그 먼 나라에 와서 음악과 그림과 시 그리고 거기 얽힌 가난을 생각했다.

쇤부룬과 수원성

 그 큰 쇤부룬 궁전 건물, 수많은 방들, 그 호화로운 장식과 가구들, 특히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요한 인물들의 수많은 초상화와 행사장면들, 크기가 어떤 것은 가로 세로 각각 수 미터씩에 달하는 것들이 그림이 아니라 실에 물을 들여 베를 짠 것이라 생각하면, 당시 왕조의 힘과 사치와 영화를 상상할 수 있다. 하긴 합스부르크 왕조의 전성기에는 동쪽으로 헝가리·루마니아·세르비아로부터, 남쪽으로는 밀라노를 포함한 북부 이태리 그리고 북쪽으로 체코의 보헤미아·모라비아에 이르기까지 그 영토였다니 짐작할 만하다. 그런 사치와 영광의 뒤편에 숨어 있는 수많은 건축가와 화가와 조각가, 서민들의 삶은 어떠했을까를 상상해본다.

 구경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이 거대한 궁전이 세워진 18세기 초반, 그리고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18세기 중·후반, 조선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18세기 초반은 숙종 때로 궁녀출신 희빈 장씨의 아들(훗날 경종)과 무수리 출신 숙빈 최씨의 아들(훗날 영조)을 둘러싼 노론과 소론의 당쟁이 치열하던 시절이었다. 결국 소론의 승리로 경종이 즉위하지만 4년 만에 승하하고, 1724년에 노론의 지원을 받던 영조가 즉위하여 조선 최장의 재위기간을 누리면서 당쟁의 폐단을 줄이려 탕평책을 쓰지만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1762년의 일이다.

  영조의 뒤를 이어 자신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1776년 왕이 되고 정조는 당쟁으로 얼룩진 한양을 떠나 수원으로의 천도를 염두에 두고 정약용이 발명한 거중기(擧重機)를 이용하여 수원성을 축조(1794-1796)하는, 오늘날의 용어로 신도시 건설 사업을 벌인다. 쉰부룬의 웅장함에 얼마간 주눅이 들어있던 우리에게 일행 중 누군가가 수원성도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임을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