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nJ 농정전략연구센터 소장  고영곤

 오스트리아의 농업현황

  현재의 오스트리아는 20세기에 들어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력 면에서 과거의 영광에 비하면 조그마한 나라로 전락했다고 할 수 있다. 국토면적은 8만3천Km²로 남한의 9만8천km²보다 작다. 알프스 산맥을 끼고 있어 산지가 많은 관계로 우리나라처럼 국토의 2/3가 산이고 국토면적 가운데 농경지 비중 역시 우리나라와 같은 16.6%이다.

미국 국무부가 구매력을 기준으로 추정한 2006년의 국내총생산(GDP)은 2,838억 달러로 우리나라의 1/4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구가 8백만 명에 불과하여 국민 1인당 국토면적이나 경지면적은 우리의 5배정도지만, 취업자 가운데 농업의 비중이 3%에 지나지 않아 농업종사인력은 고작 12만 명으로 우리나라의 1/10도 안되니 농업종사자 1인당 경지면적은 우리나라의 50배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1인당 GDP는 3만4천 달러로 아주 여유롭고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2004년 기준 맥류재배 면적이 약 51만ha(밀 29만, 보리22만)로 우리나라 벼 재배면적의 절반을 넘는 수준이고, 옥수수 재배면적이 약19만 ha, 사탕무와 토마토가 각각 4만 ha와 2만 ha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가축 사육두수는 소가 약 215만두, 돼지가 380만두, 가금이 약36만수 수준이다. 소는 현재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돼지와 가금은 우리나라의 절반 미만인 셈이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여서 수산물 생산은 아예 없고 내수면 어업도 보잘 것 없다.

오스트리아의 농업정책과 제도

  농업정책은 EU의 공통농업정책(CAP)의 정책방향을 따르고 있는데, 주요 농정목표를 보면

  □ ‘오염되지 않은 농촌지역에서 생존력 있고 경제적으로 건강한 농장에 기반을 둔 농업을 유지’ 하고

  □ ‘다각적인 소득과 농업부문과 비농업부문이 결합된 고용기회를 증진’ 하며

  □ ‘시장지향적인 생산과 유통 가공을 촉진’하는 동시에

  □ ‘다른 산업부문에 비해 불리한 '농업부문이 타 산업과 균형을 이루도록 지원' 하며

  □ '고품질의 식품과 원료 농산물 그리고 자연 자산인 토양, 물, 공기를 공급'하고

  □ '문화와 레저 자원을 보호, 조성하는 한편 자연재해로부터 보호를 지 원’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우리나라의 상투적인 정책목표를 열거해 둔 느낌이지만 여기에 부가적으로 가족농의 유지, 생태 지향성, 농외소득 증대, 농업부문의 기업가 정신과 직접 농업생산과 연결되지 않은 서비스에 대한 보상책 등이 강조되고 있음을 보면 농업정책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중앙정부의 농정담당부서는 그 명칭이 농업·임업·환경과 수자원관리부(Ministry of Agriculture, Forestry, Environment and Water Management)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농업담당 장관의 업무범위가 매우 광범위함을 엿볼 수 있다. 어쩌면 이 나라에서 농업이 상대적으로 가볍게 취급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와 다른 한 가지 특이한 상황은 9개의 모든 주(Province)에 농업회의소라는 단체가 구성되어 있고, 중앙단위에는 각 주 농업회의소 회장의 상임위원회가 있는데 이 상임위원회가 EU의 농민연맹(COPA, Committee of Professional Agricultural Organization)회원이라는 점이다. 또한 오스트리아에서 경제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의사결정은 이 농업회의소장 상임위원회, 오스트리아 경제회의소(Austrian Economic Chamber), 연방노동회의소(Federal Chamber of Labour), 오스트리아노동조합연합회(Austria Federation of Trade Unions)등 4대 이해당사자 집단의 협의에 토대를 둔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조사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이런 시스템은 1955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어느 쪽에도 서지 않고 영세중립국이기를 선언한 이 나라의 특징적인 제도로서“사회적 협력”(social partnership)이라고 부른다.

이런 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그 제도를 운영하고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훈련이 중요한 것임은 인류가 고안한 모든 제도에 공통적이리라. 그것이 ‘민주주의’든 ‘협동조합’이든 아니면 ‘의원내각제’든 ‘대통령중심제’든 이점에 관한 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완만한 곡선의 농촌풍경

  우리는 1박2일의 오스트리아 일정을 마치고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향해 출발했다. 1박2일이라지만 시간상으로는 비엔나 공항에 도착한지 24시간도 안 된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사실상 한 나절 뿐인 비엔나 관광, 그러나 수많은 황제들과 음악가들과 건축가들을 만났으니 수백 년을 거친 것과 마찬가지로 길고 긴 여행을 한 것 같다.

  비엔나에서 부다페스트까지는 약 260km 쯤 되니 서울에서 전주까지 가는 정도로 날씨는 맑았고 버스 안은 쾌적했다.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요한 스트라우스, 주페 등 쟁쟁한 음악가들이 나란히 묻혀 있다는 비엔나 시립 중앙공원, 2차 대전 때 게슈타포 본부로 쓰였던 건물과 거기 쓰여 있는 “결코 잊지 말라”는 간판, 그 유명한 비엔나대학, 모차르트의 고향이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유명한 찰스캄머굿 등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며 비엔나를 빠져나오자마자 우리는 금방 아름다운 농촌 풍경에 빠져들었다. 자연의 치맛자락에 싸인 농촌은 어느 나라나 다 아름답기 마련이다.

  들판은 수확이 끝나 이렇다 할 농작물은 보이지 않으나 들판의 아주 완만한 곡선들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우선 하늘과 땅의 경계를 이루는 선이 완만했다. 오스트리아가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긴 하지만 산이 서쪽으로 몰려 있어 우리 버스가 달리는 동부 쪽으로는 완만한 구릉지대 뿐이다. 높은 산이나 흉물스런 고층 건물이 시야를 가리지 않는 들판은 잔잔한 파도처럼 멀리 멀리 퍼져있다. 농지의 필지를 구분하는 경계선 또한 아주 완만하고 평화로운 곡선을 연출하고 있었고 한 필지의 크기가 수천 평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였다.

  간혹 미처 수확하지 못한 옥수수 밭이나 해바라기 밭이 나타났고 어쩌다 축사(畜舍)도 나타났다. 우리 일행들은 그 때마다 반가워하고 아이들처럼 환호했다. 왜 우리는 이역만리 이국땅에서 농작물을 보고 반가워할까. 농업에 몸담고 있다는 직업의식의 발로일까 아니면 농촌 들녘에는 의례 농작물이 있어야 한다는 막연한 기대 또는 무언지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농심(農心) 때문일까.

  비엔나 시내에서 한참을 빠져 나와 이제 도시근교도 아닌데 어쩌면 주택들이 저렇게 비엔나 시내나 도시근교나 농촌에 전혀 차이가 없을까. 약간 붉은 색깔의 지붕과 하얀 벽도 마찬가지, 경사가 큰 지붕 모양이나 주택크기 그리고 주택들 사이의 푸른 나무들도 도시와 농촌 간에 큰 차이가 없는 듯 했다. 멀리서 본 주택처럼 도농간의 소득이나 삶의 질도 차이가 없어야 할 텐데 이 나라 사정은 어떠한지 궁금증을 억누르며 ‘그 먼 나라’ 농촌풍경을 감상했다.

  가끔씩 여기 저기 세워져 있는 풍력발전기가 크고 긴 팔을 천천히 허공에 젓고 있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어떤 곳에는 대 여섯 개 씩, 또 어떤 곳에서는 수 십 개의 풍력발전기가 한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풍력발전기 하나면 대략 250가구의 전기는 감당해 낸다고 한다. 바닷가도 아닌 내륙지역인데 풍력발전기가 저리 많이 보이는 것은 이곳이 바람이 많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변산반도 어디선가 두어 개 서있는 풍력발전기가 고장인지 바람이 없어서인지 그냥 낮잠을 자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톨게이트냐 국경선이냐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국경에 도착했다. 멈추어 선 버스에 출입국 관리직원이 올라와 각자의 여권에 붙은 사진과 실물이 일치하는지를 보면서 여권을 거두어 갔다. 그가 사무실에 가서 출입국제한이 있는 사람인지의 여부를 확인하고 여권에 입국허가 스탬프를 찍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해외 여행객이 아니고 EU회원국 국민이라면 승용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여권을 보여주고 단 몇 초 만에 국경을 통과한다. 마치 우리나라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요금을 내고 지나가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우리 버스에는 지구 저편에서 온 26명의 이방인이 타고 있었는데도 수화물 검색은 물론 화물칸을 열어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웬만한 검문소 수준도 안 되는 것 같다.

  이는 EU 권역 내의 어느 나라에서나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국가, 국경, 민족의 개념이 급격하게 약화되어 바야흐로 지구촌 시대로 들어간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사실 EU국가들 사이의 국경은 산이나 강으로 구획되지 않은 곳도 많다고 한다. 국가와 국가를 갈라놓는 철조망도 없고 그저 조그만 말뚝을 띄엄띄엄 박아 놓는 것으로 국경선을 표시하는 곳이 많아서 국경을 수비하는 군인들도 없고 사람들이 언제든지 이웃 마을에 가듯 국경선을 의식하지 않고 이웃나라 사람들과 이웃마을 사람들처럼 지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마치 전라도와 경상도 경계에 있는 이웃 마을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지난 1978년, 유신 말기 무렵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하면서 말레이시아 남단 조호바루라는 도시에서 저녁을 먹고 싱가포르에 가서 놀다가 다시 조호바루 호텔로 돌아오면서 ‘아, 국경이라는 개념이 이렇게 허술할 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이 충격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도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바다를 경계로 하고는 있었지만.

  고유 언어와 고유 문자를 쓰는 단일 민족에 반도(半島)국가이며, 남북간 긴장이 지속되는 분단국가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경과 민족에 대한 개념이 고정관념으로 박혀있는 모른다. 군대생활을 하던 휴전선은 어떤가. 남과 북 양쪽에서 철조망을 치고 각각 철조망 뒤에서 군인들이 총구를 맞대고 있는 휴전선은 언제나 그 모습이 바뀔 것인가.

 EU국가들의 역사를 보면 20세기의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19세기의 나폴레옹 전쟁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전쟁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종교문제로 때로는 영토문제로 전쟁이 반복되면서 침략을 하고 침략을 당하며 지배국과 피지배국, 적대국과 우방국이 얽히고설키는 관계로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런 나라들 사이의 국경이 이처럼 사라져 가고 동서간의 이데올로기 냉전이 끝난 지도 20여년이 지났는데, 우리의 휴전선은 언제나 그 서러운 모습을 벗을 것인가. 우리도 언제쯤 승용차로 금강산, 평양, 백두산을 갈 수 있을까. 언젠가는 두만강 백두산 너머 중국과 간도와 시베리아를 거쳐 이 곳 유럽까지 기차로 또는 승용차로 여행하는 꿈이 이루어지는 날도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