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nJ 농정전략연구센터 소장  고영곤

 지금도 멘델의 완두콩 꽃은 피고 있을까

  브르노(Brno)는 체코 제2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인구 37만의 아담한 도시였다. 체코의 프라하,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폴란드의 오슈비엥침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이어서 한국 관광객들이 하루저녁 묵고 가는 도시인 것 같았다. 체코는 크게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그리고 실레지아 지방으로 구분되는데 프라하는 보헤미아의 중심이었고 브르노는 한때 모라비아왕국의 수도였다. 브루노는 우리나라 사람들 취향에 맞는 특별한 관광지는 없으나 유전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멘델이 원장으로 있던 수도원이 있는 곳이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멘델이 수도원의 사제로 근무하면서 정원에 완두콩을 심어 꽃과 열매의 모양과 색깔, 떡잎과 줄기의 모양과 색깔 등을 관찰하여 그 유명한 ‘멘델의 법칙’을 발견한 곳이다. 그는 8년 동안 3백회가 넘는 완두콩의 교배실험을 거쳐 1866년에 브르노에서 열린 한 학술회의에서 ‘식물의 잡종에 관한 실험’ 이라는 제목으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으나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그것이 가지는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탓이었으리라.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1900년에 들어와 네덜란드의 생물학자 드프리이스가 달맞이꽃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꼭 같은 결과를 얻어냈고, 또 같은 시기에 독일의 코렌스가 완두콩과 옥수수의 실험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그런 다음 그들은 뒤늦게 34년 전에 이미 멘델의 연구결과가 발표되었음을 알고 도대체 멘델이 누구인지를 알아보고 그 업적을 평가하기 시작함으로써 오랫동안 도서관에서 사장됐던 완두콩실험결과가 햇빛을 보게 되어 유명한 멘델의 법칙으로 불리게 되었다.

  ‘모든 동물과 식물은 우성과 열성의 형질을 지니고 있고, 우성형질이 열성 에 우선하여 나타난다는 우열(優劣)의 법칙, 우성과 열성의 형질은 각각 분 리되어 자손에게 전달되므로 같은 부모의 자손이라도 보유한 형질은 다를 수 있다는 분리(分離)의 법칙, 그리고 모든 생물은 우성과 열성으로 구분되 는 한 가지 이상의 다양한 유전형질을 지니고 있고 이들 유전 형질들은 각 독립적으로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독립(獨立)의 법칙’으로 요약되는 ‘멘델의 법칙’이야말로 실로 오늘날 인류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멘델의 법칙이 아니었다면 동물과 식물의 품종 및 종자개량이 불가능했을 것이고 이를 토대로 한 눈부신 농업발전도 없었을 것이며 인류는 지금과 같은 번영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리라. 인류는 굶주린 배를 채우려는 원초적인 본능마저 감당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우리는 개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브르노의 한 호텔에서 여장을 풀지도 못한 채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아침 프라하를 향해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멀어져가는 브르노를 바라보며, 오늘날의 농업과 축산업 나아가 의학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한 멘델이 근무하던 수도원은 어디쯤 일까, 그 수도원엔 멘델을 기념하는 박물관이 있다는데, 그리고 혹시 멘델이 실험결과를 발표한 학회가 열렸던 곳이 혹시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잠겼다.

  ‘멘델의 그 수도원엔 지금도 완두콩 꽃이 피고 있을까.’

현존하는 중세의 도시 프라하, 그 영욕의 세월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다. 체코의 국토면적은 약 8만 ㎢로 우리나라보다 약간 작으나 평야지대가 많아 경지면적은 우리나라보다 두 배 이상 많다. 게다가 인구가 1천만 정도이니 국민 1인당 경지면적은 거의 우리나라의 10배 수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업을 비롯하여 비농업부문의 발달로 국내총생산액 가운데 농업의 비중은 우리나라보다 약간 낮은 2.8%수준이고 농업부문의 취업자 비중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은 4%이다.

주요 농산물은 밀, 감자, 사탕무, 호프 등이고 양돈을 중심으로 한 축산업도 발달해 있다. 40년 이상 공산당 집권을 거쳤지만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미국 CIA가 구매력을 기준으로 평가한 바에 의하면 2만 달러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고, 프라하 사람들은 정말 여유 있고 풍요로운 삶을 즐기는 듯 하였다. 2차 대전 이전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뒤, 마사릭(Masaryk) 대통령이 의회민주주의를 시행하던 시절만 하더라도 프라하는 오히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보다 잘 사는 도시였다고 한다.

  프라하는 ‘지붕 없는 건축박물관’으로 불린다. 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 프라하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부터 고딕 · 르네상스 · 바로크 · 로코코나 아르누보 양식 등 일반인들은 잘 구분할 수 없을지라도 그야말로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남아있어 거의 다 현재 생활에 그대로 사용되는 동시에 이들이 만들어 내는 도시의 아름다움이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그리고 그런 건축물마다 때로는 웅장하고 때로는 아름답고 또 때로는 슬픈 역사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프라하는 오늘날 흔히 동구 또는 동유럽이라고 하지만 지도를 펴놓고 보면 유럽의 중심부여서 ‘유럽의 심장’이라고도 불리고 또 건물들의 지붕위로 솟아있는 뾰족한 첨탑들이 많아서인지 ‘백탑의 도시’로 불리기도 하며, 발달된 학문과 예술 그리고 역사적 유물들을 상징하는 ‘북쪽의 로마’라는 별명도 지니고 있다.

  21세기에 현존하는 ‘중세의 도시’ 프라하는 이미 12세기에 중부유럽 최대의 도시였고 14세기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수도가 되어 그 전성기를 누렸다. 카를4세(Charles Ⅳ)가 왕이 되고(1346년) 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어(1355) 체코를 다스리던 14세기 무렵 이 나라는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크게 번창하였다. 1348년에 이미 중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카를대학이 설립되었고 한때는 프라하 인구 4만 명 가운데 7천여 명이 카를대학생이었다니 그 무렵 프라하가 유럽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1357년에는 오늘날 프라하가 연인들의 도시로 알려지는 데 크게 기여한 블타바강위의 아름다운 다리 카를교가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5세기에 들어와 얀 후스의 종교개혁운동으로 신교와 구교사이의 종교적 갈등이 벌어져 많은 유물들이 파괴되거나 상처를 입으며 국력은 쇠약해져 갔다. 급기야 1526년부터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의 페르디난트 1세가 체코와 헝가리의 왕이 된 이래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무너질 때까지 프라하는 비엔나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이미 1845년에 프라하와 비엔나를 연결하는 철도가 개설 운영되고 1868년에 국립극장이 개설 되었을 정도로 체코와 오스트리아는 관계가 깊었고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문화적으로 앞선 나라였다.

  300년 이상 외세 지배를 받던 체코가 1차 대전이 끝나고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하면서 프라하는 이 나라의 수도가 되었으며 초대 대통령으로 마사릭이 취임함으로서 체코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였다. 당시 체코는 동구 최초로 의회민주주의를 실시하여 ‘민주주의의 섬(island of democracy)’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나 2차 대전의 발발과 함께 1939년부터 1945년까지는 나치 독일의 점령 하에 있었다. 1945년 소련군의 진입으로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되었으나 1948년에는 공산당 정권이 수립되어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하였다.

   그 후 프라하의 봄, 벨벳혁명 등의 우여 곡절을 겪으며 체코슬로바키아는 1989년 40여 년 간의 공산당 통치를 벗어나 민주국가로 환생하였다. 뒤이어 1993년 1월 1일부터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분리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999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였고 2004년 1월에는 EU회원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