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GS&J 회원회 회장이신 윤여임 대표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다시 버스는 고창국의 귀족묘였던 아스타나 지하고분군을 향해 달렸다. 묘지 입구의 복희여와상과 12지신상이 없었더라면 묘지인지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엉성한 자갈돌이 섞인 메마른 흙무덤이 간신히 봉분모양을 하고 스산하게 흩어져있는데 도굴흔적이 여기 저기 보였다.

이곳의 장묘풍습은 시신을 매장하는 것이 아니라 시상에 시신을 그대로 안치하는 조로아스터교식 장법을 따랐는데, 땅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바닥에다 폐기 된 공문서를 깔고 시신을 안치했다한다. 뿐만 아니라 문서를 오려 버선이나 옷을 지어 입히기도 했다. 후에 이것들을 수거해 조사해 보 니 그 당시의 조용조(租庸調)나 행정제도 등이 적혀 있는 투르판 문서로 동양학 연구의 일대 전기를 마련했으나 온전한 것은 것의 없다. 매장방식에서는 합장을 기본으로 하고 천장형태는 방주형 묘실을 점점 좁혀 나가는 말각조정법(모줄임 천장)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묘실 내부에는 동물의 얼굴과 인간의 얼굴을 한 진묘수 한 쌍이 있는데 동물은 우제류라고 한다. 소 이야기만 나오면 어디서나 귀가 번쩍 뜨이고 동물 적인 본능이 발동 한다.

 여기서도 신장 박물관에 이어 몇 구의 미이라를 볼 수 있었다. 짧은 한 평생,희노애락 애오욕으로 점철 된 이승의 삶을 놓아버린 후 오랜 세월을 견딘 마른 육신은 원소의 조 합으로 이루어진 유기물에 지나지 않았다. 천년을 넘어 후인들에게 볼거리로 누워있는 타국의 조상에게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의 맘을 표했다. 결국 인간의 칠정(七情)이란 시간의 함수가 아니던가. 인간사, 그런 마음으로 무심히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길 건너편에는 훨씬 더 큰 묘지가 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발굴현장을 그냥 묻어버려 다시 발굴이 시작되면 어마어마한 유물들이 출토될 것이라고 한다.

 묘지입구에는 한대의 건국신화를 묘사한 복희여와도를 형상화한 조각물이 십이지신상에 둘러싸여 있다. 십이지신상은 사람보다 큰 크기로 하나하나씩 서있는데 무심코 술(戌)에 가서 포즈를 취하니 나이가 드러나고 말았다. 복희여와도는 남신(복희)은 곡자, 여신(여와)은 컴퍼스를 들고 있는데 아래 부분은 뱀이 하나로 합쳐지는 형상을 하고 있어, 복희는 세상 창조를, 여와는 탄생을 의미한다. 이는 중원의 문화이면서도 중앙아시아(투르판)에 이르러서는 다른 것으로 묘사된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진품 그림이 있다고 한다.  

 - 베제클릭 천불동이여! 야만인들의 이름을 길이 전하라

 서유기의 주요문대가 된 화염산 중편 낭떠러지에는 위구르어로 ‘아름답게 장식 된 집’ 이라는 뜻을 가진 베제클릭 천불동이 있다. 아스타나 고분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베제클릭에 다다르니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낙타를 볼 수 있었다.

 고운 천으로 안장을 장식한 낙타는 보기에도 아주 불편한 모습으로 쪼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사막에 와 보니 새삼 낙타 라는 동물이 실크로드 개척에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 한껏 고마운 맘이 들었다. 낙타는 눈썹이 길어 모래바람에도 잘 견디며, 발바닥이 부드럽고 넓어 무거운 물건을 싣고도 모래에 빠지지 않는 신체구조를 가졌다고 한다. 게다가 사람은 먹을 수 없는 소금물을 마실 수 있다고 하니 낙타는 가히 사막의 영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낙타에게 잠시 고마움을 표하며 베제클릭 유적 안으로 들어섰다. 베제클릭 유적에서는 문명인의 탈을 쓴 열강의 야만인들이 탐험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약탈의 현장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그 지역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정신과 육신의 안식을 주었을 석굴내부의 불화는 철저하게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는데도 아름다움과 섬세함으로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석굴의 파괴는 비단 외국 수탈자들에 의해서 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이슬람교도들에 의해서 자행되거나 방치 된 것도 많다. 20세기 초 탐험의 이름으로 이곳에서 약탈을 시작한 독일인 르콕은 실크로드 유물을 파괴한 악마들의 대명사와도 같은 사람이다. 그는 매우 과학적(?)인 방식으로 편취한 벽화를 모두 독일로 가져가 박물관에 그대로 복원하였다고 하나, 2차 대전 때 소실되었다 고 하니 그 아까운 맘을 금할 길 없다.

  이 외에도 일본인 승려 오오타이 고즈니는 대조적으로 매우 엉성한 방식으로 벽화를 절취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파괴가 더 심했다고 한다. 자국의 영토에서 무참한 약탈이 진행되어도 방치할 수 밖에 없는 한 국가의 무기력함이라니! 국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거대한 박물관인 실크로드에서 이렇듯 약탈당한 문화재가 얼마나 많은지 민박사는 피터홉커크의 ‘실크로드의 악마들’의 일독을 권유했다. 실크로드 답사의 감동이 잦아들기 전에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