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GS&J 회원회 회장이신 윤여임 대표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7월 31일 아침에 침대에서 부스스 눈을 뜨는데 은하가 얼른 다가와 포옹하며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전하고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에 생일축하 꽃바구니가 배달되어 왔는데 우리 집에 생일 맞은 사람이 없다고 했더니 배달하는 사람이 맞다며 놓고 가더란다. 한참을 웃었다. 결혼한 지 30년이 다 되어도 무심하기만 한 사람, 그런데 그 무심함에도 이골이 났는지 아무렇지도 않다. 실크로드 여행에서 맞이한 생일날 아침, 블록미역국을 뜨거운 물에 풀어 밥을 말아 놓고 시간이 없어 결국 못 먹고 길을 나서야만 했다. 호텔에서 떠나기 전 엄마에게 전화를 드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에 머리 숙여 감사를 표했다.

  한국에 있었으면 중복 무렵의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릴 텐데 초가을 같은 날씨가 얼마나 쾌청한지 절로 기분이 좋았다. 오전에 주유소 편의점에서 은하가 하나에 4위안(800원 정도)하는 네스카페 캔 커피를 70개 정도 사서 버스 두 대에 고루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라도 엄마 생일을 축하 하고 싶다고 했다. 일정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도중에 버스 안에서 은하가 마이크를 잡고 생일 축하 노래로 ‘소양강 처녀’를 불렀고 나는 답으로 ‘부모’를 부르는데 자꾸만 목이 가라앉았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건강상태가 안 좋으신 아버지 손을 붙잡고 실크로드 여행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살아계시라고 농담처럼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자 어린애처럼 천진하게 웃으셨던 모습이 생각났다. 햇살이 기울어가는 버스 안에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옛이야기 듣는가...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막바지에 다다른 여행을 축하하는 뜻에서 저녁에는 하나투어 권대표가 양 바 베큐 두 마리를 희사하였고 우리는 20세기 초 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선점을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였다던 카슈가르의 영국대사관 자리에서 만찬을 가졌다. 빨간 리본을 목에 매고 공손히 무릎을 꿇은 양은 살아있는 듯 한 모습으로 기름이 쏙 빠진 채 불가마에서 나와 저녁상을 풍성하게 하였고 민속무용단들이 흥을 돋우었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것 같이 과묵한 김수종 선생도 술을 한잔 하고 나와서 무희들과 어울려 춤을 추었다. 유쾌하고 아쉬운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방석만한 케이크가 배달되어 오고 연꽃봉오리처럼 생긴 초에 불을 붙이니 불길이 타들어 가며 연꽃이 피어났다. 둘러서서 축하노래를 불러주는 이 사람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은하의 찰랑찰랑, 박원순 상임이사의 예의 생일축하 노래, 작년에도 들었던 그 노래가 어둔 이국의 밤에 메아리쳤다. ‘나혼자 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 나 호오온자아만이 그대애를 ...’

 위구르어와 한글이 섞인 판화 같은 사각도장과 멋진 숄을 생일선물로 받았을 때의 감동이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기쁨은 어렵고 힘들 때 용기를 내는데 쓸 수 있도록 아껴두기로 했다. 감사의 말도 굽이굽이 서려서 마음 속 깊이 넣어 두었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