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GS&J 회원회 회장이신 윤여임 대표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첫눈에 반한 이스탄불의 하루

  이스탄불방문 인증 샷은 아기아소피아 대성당에서 찍어야 할 것 같다. 해협을 돌아서 배에서 내려 히포드로모스 광장의 오벨리스크를 지나 아기아소피아 대성당을 향해갔다. 어찌나 태양이 좋은지 그늘조차도 서늘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꽃들이 만발한 4월의 이스탄불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엔 기쁨이 가득했다.

 공사를 시작한지 근 6년 만에 완성한 후 첫 예배를 드리러 성당에 들어갔던 537년 12월, 유스티아노스 황제는 그 아름다움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도다.'라고 했다던 아기아소피아 성당. 어마어마한 돔을 얹기 위해 동원되었던 당시의 기술과 성당내부를 장식했던 성화와 조각들, 성당축조에 동원되었을 인부와 자금들을 생각해 보며 성당 안을 둘러보았다.

 유재원교수는 아기아소피아 대성당의 내부를 예수그리스도가 중앙에 자리 잡고 그 주변으로 성모마리아와 세례자 요한과 천사들이 둘러싼, 공중에 떠있는 천국으로 묘사한 바대로 , 대성당은 규모나 예술성이나 아름다움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성당 안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사람이 없이 차분하게 성당 안에서 머물 수 있다면, 속세에 대한 욕망은 사라지고 영혼이 하늘을 떠도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고 했던 유교수의 그 깊은 잠심의 경지에 도달하는 느낌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리석과 첨탑, 오색 타일과 금박의 화려한 장식은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성당 안을 장식하고 있었다. 화려하고 우아한 장식들이 도처에 즐비한 아기아소피아 성당이 인류문화의 보석임을 말한다는 것은 사족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잔틴 제국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그 아름다운 성화에다 덧칠을 한 오스만투르크의 단순한 넝쿨문양도 오백년이나 된 문화임을 어찌할 수 없다는 유교수의 지적이 한숨처럼 마음에 전해왔다. 신장의 실크로드 유적지에서 보았던 불화에 덧칠한 이슬람의 흔적들을 생각하며 후발종교인 이슬람이 인류문화유산에 참 못할 짓을 많이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인류역사상 최고의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우리세대가 앞으로 천년 뒤 인류에게 전해 줄 문화유산은 무엇일까? 더 이상 특권층이 사사롭게 향유하는 종교시설이나 문화시설이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현재 우리가 누리는 문화유산은 많은 것들이 결국 지나간 세기의 절대 권력자의 취향 덕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인도의 예만 보더라도 우리가 보는 것들 중 많은 것이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샤자한 치세에 이루어진 것인데, 이는 샤자한이 건축에 조예가 깊은 건축광이었던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하니 말이다. 타임캡슐에서 쏟아져 나올 것들이 후세들에게 어떤 감흥을 줄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에서 백성의 고혈을 담보삼아 엄청난 대역사가 이루어지는 곳이 있을까, 두서없이 생각이 흘러간다.

  아무튼 아기아소피아 성당내부는 그리스도교 성화와 덧칠한 이슬람의 흔적, 그 덧칠을 벗겨내는 작업들이 한곳에 어우러져 있지만 그 자체로도 감동을 말하기에 지면이 모자란 곳이었다. 그 대단한 유물을 한 시간 여 만에 둘러본다는 것은 오히려 고통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한 바퀴 성당 안을 돌아 나오며 인간의 위대함은 어디까지인가, 오늘날의 예술의 경지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세월이 흐른 만큼 발전한 것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 밖 카페에서 바라본 성당 건물위에 드리운 하늘의 푸른빛이 시려서 눈에 물기가 돌았다.

 이스탄불 박물관에서 보았던 애도하는 여인의 석관과 앳되고 잘생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모습이 긴 여운을 남겼다. 터키에서의 마지막 날, 서서히 해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이땅의 긴 영욕의 역사를 스치듯 훑었던 긴 하루가 나의 짧은 한 생애가 존재하는 날까지 마음속에 굳건하게 자리 잡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