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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5.15
제목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다. 
첨부파일
 

* 저자는 연세대 상경대학을 졸업하고 LG 전무 및 부사장, 레드캡 대표, 태광산업 대표 등을 엮임 후 암에 걸렸으나 강인한 의지로 투병하며 산티아고 가는 길 900km를 39일 간 걸어서 완주하였고, 후원인으로 GS&J를 지원하고 있다. (연락처: leejh@gsnj.re.kr)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다.

 

 

 

심 재 혁(호텔 인터콘티넨탈 전 대표)

 

  

 10여년 전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노인과 바다’의 노인 산티아고와 ‘연금술사’의 양치기 산티아고, ‘순례자’를 떠올렸고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40여일의 휴가를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서 내 버킷 리스트에 올려 놓았었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 한 분인 성 야고보 는 이베리아 반도로 복음을 전파하러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AD42년 헤롯 왕의 명으로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그 제자들은 시신을 수습하여 이베리아 반도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에 매장하였다. 이 지역은 AD711년 이래 이슬람교도인 무어족이 침략하면서 가톨릭교도와 유태교도들이 투쟁하며 살아온 지역이다.

 

그 후 AD820년경 성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되자 알폰소 국왕이 추모성당을 건립하고 AD1189년 교황 알렉산더 III세는 산티아고를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세계 3대 가톨릭 성지로 선포하였고, 13~14세기부터 유럽 각지에서 추모순례가 이어졌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후에는 매년 가톨릭신자뿐 아니라 명상, 수련, 도전과 모험을 좋아하는 30만명 이상의 순례객들이 찾고 있다.

 

2015년, 7개월간의 항암 치료와 양성자 방사선 치료를 마친 후,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고, 또 바쁘게 살아온 내 삶을 돌아보고 싶었다. 이제 산티아고 순례길을 나설 때가 된 것이다. 나는 제주도 올레길과 전국의 산을 다니며 체력을 단련하였고, 2017년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다. 그리고 2018년 4월 순례를 시작했다.

 

 매일 메고 다닐 배낭의 무게는 자신 체중의 1/10이 이상적이라는데 줄이고 줄여도 8.5kg이었고, 물과 간식거리를 채우면 9~10kg에 달했다. 내가 준비했던 물품들은;

 

50리터 배낭, 방수커버, 침낭, 스틱, 우의, 등산화, 깔창, 양말, 샌들, 바지(여름용+겨울용), 패딩조끼, 방풍점퍼, 내복, 반팔셔츠, 반바지, 모자, 장갑, 물통, 헤드랜턴, 주머니 칼, 스패츠, 세면도구, 손톱깎이, 세제, 비상약, 스포츠타월, 빨래집게, 머그잔, 웨이스트백 등이다.

 

스페인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약 5배, 인구는 우리보다 적은 4600만명이다. 유럽 각지에서 산티아고를 향하는 순례코스는 크게 12개 가량이나, 내가 걸었던 대표적인 코스 카미노 프랑세스(Camino Frances)는 프랑스 남부 국경도시 생장피드포르(St. Jean Pied de Port)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까지 800k, 대서양 연안 땅끝마을 피스테라(Fisterra)를 거쳐 무씨아(Muxia)까지는 900km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 카미노 프랑세스

  

 나는 2018년 4월 12일 생장피드포르 순례자협회 사무실에서 순례자 증명서(Credential)를 발급받고, 4월 13일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de Compostela)을 걷기 시작했다.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서 스페인으로 접어들었다. 파란 물감을 풀어 놓은듯한 하늘 아래로 지평선 가득히 진초록 밀밭, 노란 유채꽃밭, 막 싹이 트기 시작한 포도밭, 양 목장 등 시야에 들어오는 풍광은 놀랍도록 아름답고 공기는 맑고 상쾌했다. 주위는 고요하고 간혹 들리는 새소리 이외에는 적막, 정적의 순례길이었으며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 찬송가가 절로 나왔다. 아침 길에는 지렁이와 조약돌처럼 보이는 달팽이들이 무심한 순례객들에 밟힌 사체로 눈에 띄어, 산 달팽이를 볼 때마다 풀섶에 옮겨주곤 했다.

 

순례길은 포장도로 구간을 지나기도 하나 대부분 비포장길로 흙길, 자갈길이나 산길이다. 시골 마을을 지날 때면 소나 말과 가축들의 배설물들이 널려있어 해가 날 때는 피해 걸으면 되지만 비가 오면 범벅이 된 진흙길로 변해 발목이 긴 등산화가 필요하다. 또 산길을 가다 보면 손바닥만한 납작한 돌들이 깔린 너덜길을 한 시간이나 걸을 때가 있는데 발목이 삐끗하지 않도록 스틱을 주의하며 짚고 다녀야 한다.

 

날씨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나 4월 중순 피레네 산맥 1450m 고개를 넘을 때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넘느라 스패츠를 착용해야 하는 구간도 있다. 스페인의 첫 마을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부터는 800~900m 고도의 봄날씨 같은 메세타 지역을 지나고 점점 초여름날씨 지역으로 접어들게 된다. 어떤 날에는 하루에 4계절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새벽녘 동이 트면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봄기운을 느끼다가, 해가 뜨면서 작열하기 시작하면 한여름이 되어 자켓을 벗고 반소매와 반바지로 걷다가, 구름이 해를 가리면 가을 소슬바람이 불고, 그 와중에 바람이 불고 비라도 쏟아지면 우박으로 변해 한겨울처럼 추워져 패딩조끼를 꺼내 입어야 한다.

   
         

     눈덮인 피레네 산맥                                     밀밭과 유채반의 지평선

 

 매일 하루의 일과는 새벽 6시 전후에 기상, 세면과 간단한 조식을 마치고 7시경 출발한다. 도중 마을의 식당이나 바르(Bar)에서 점심을 들고 오후 2~5시경 다음 행선지의 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에 도착하면 침대를 배정받은 후, 샤워와 세탁을 마치고 휴식을 취한다. 알베르게는 마을마다 상황이 다른데 지역 교구, 수도회나 수녀회, 지방자치단체 또는 민간이 운영하는 숙소들이 있다. 요금은 수도원처럼 무료인 경우 기부금 박스가 있어 5유로 가량 넣기도 하며, 일반적으로 5유로부터 12유로까지 다양하다. 시설은 벙커식 2층 침대, 샤워실, 화장실, 식당 등이다. 저녁식사는 알베르게마다 달라서 식당이 있으면 여러 순례객들과 함께 순례자 메뉴로 식사하게 되며 요금은 10유로, 아침은 3유로다. 식당이 없고 인덕션 조리기구등이 있으면 동네 슈퍼마켓에서 바게트, 야채, 과일, 요거트 등을 사다가 조리하거나 마을 식당으로 간다.

 

    

 알베르게의 식사

 

 알베르게에서는 도착순으로 침대를 배정받는데 늦게 도착해서 침대가 마감되고 나면 다음 마을까지 가야한다. 다음 마을까지가 2~3km라면 다행이지만 5~10km를 더 가야 한다면 낭패다. 침실은 물론 샤워룸과 화장실은 남녀 공용이라서 처음엔 불편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화장실이 부족해 새벽부터 줄을 서야한다. 대부분 알베르게는 21시면 출입문을 닫고 완전 소등한다. 11월부터 3월까지 동절기에는 문을 닫는 알베르게가 많아 4월부터 10월까지 순례객들이 찾는데, 6~8월엔 기온도 높고 성수기라 알베르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4~6월, 또는 8~10월이 좋은 시기이다.

 

      

 알베르게의 침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미국, 독일, 프랑스, 한국 등 세계 각지로부터 온 많은 순례객들을 만나게 된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유럽인들은 몇 차례에 걸쳐 나누어 순례길을 마치기도 한다. 이러한 순례자들과 도중에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지고, 또 며칠 후에 다시 만나기도 하며 회자정리를 실감하게 된다. 서울에서 중2 아들과 함께 온 아빠, 캐나다 유학중인 딸과 함께 온 엄마, 퇴직후 제2의 생을 설계하려는 중년, 독일계 파리지엥, 쾰른에서부터 걸어왔다는 퇴직교사, 호주에서 왔다는 동창들, 안내견과 함께 걷는 시각장애인, 두살 반된 아들과 11개월 딸을 업고 걷는 독일인 부부, 손을 꼭 잡고 걷는 영국인 노부부가 기억에 남는다. 또한 도보 순례객 외에도 자전거를 타거나 승마로 순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주일이 지나자 배낭에 쓸려 어깨에 상처가 나기도 하고, 양쪽 발엔 물집이 생기기도 하고, 무릎과 허리에 통증이 생겨 몸은 아프고 지치는데 인내심은 늘어나니 다행이다. 도중에 발의 물집 통증이 심해져 보건소에 들렀더니 실이 달린 수술용 바늘로 물집을 꿰고 양끝에 실밥을 남겨놓아 진물을 배어나오게 하더니 4일 후에 실을 뽑으란다. 순례자 증명서가 있으면 그런 치료는 모두 무료이다.

 

최근에는 이 순례길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세기 초반까지도 도로사정, 숙박시설, 치안, 위생 등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데 이제 안전은 전혀 문제없고, 이곳에도 현대화 바람이 불고 있다. 나는 스마트폰에 ‘Camino Pilgrim’이라는 앱을 설치해서 매일 아침, 다음 행선지를 정하고 중간 마을마다 거리와 내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서 지도가 필요 없었다. 큰 도시간 이동에는 시외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는 순례객도 있고, 아침에 다음 행선지까지 무거운 배낭은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서는 순례객도 있다. ‘내 짐은 내 삶의 무게’라는 생각에 나는 내 짐에 끝까지 책임을 지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일부 여행사와 언론사에서 2주간 단기 순례 상품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나는 당초에 세 명이 함께 떠났는데 선배 두 분은 발에 통증이 생겨 중도에 헤어져 산티아고까지 800km를 걸었고, 나는 처음 계획했던 대로 땅끝마을까지 900km를 걷고 산티아고로 되돌아와 다시 일행과 합류하여 여행을 마쳤다.

 

        

 산티아고와 무씨아 순례길 수료증

  

 5월 15일 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도착했다. 나는 장로교 신자지만 산티아고 대성당의 미사에 참석하였다. 대성당 내의 한 동판에 “I proclaim my faith in Christ Jesus and renew my Christian life”라고 쓰여진 앞에서 감사기도를 올리고 순례자 협회 사무실에 들러 순례 수료증을 받았다. 계속해서 5월 20일엔 서쪽 땅끝마을 피니스테레(Finisterre)에, 그리고 5월 21일엔 드디어 북쪽 땅끝마을 무씨아(muxia)에 도착하였다.

 

   

 이제 더 갈 곳이 없다!

 

 39일동안 900km를 완주한 것이다. 무씨아 해변의 바위에 걸터앉아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을 회상하고 가족들과 부모님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내가 떠나기 전 주위에선 책을 한 권 쓰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번 순례길은 “unloading“이란 문자 그대로 내려놓고, 비우고, 버리고자 떠났던 길이었기에 책을 쓸 생각은 처음부터 내려 놓았다. 스페인의 약국에는 대부분 체중계가 있기에 산티아고로 돌아와 몸무게를 재었더니 출발 전보다 6kg이나 줄었다. 우리 가족들 카톡방에 무슨 기념품을 사다줄까 물었는데 딸들이 쓴 회신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무사히 건강하게 돌아오시는 아빠가 바로 기념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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