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체험농장을 보고

농업을 넘어 하이컨셉 산업으로

 류왕보 (베티카 대표)

 농업의 6차산업화는 초기의 개별 농가를 중심으로 추진해왔던 수준에서 최근에는 지역 및 광역 단위의 융복합화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면서 ‘농촌 테마파크’와 ‘스마트팜’이 농업농촌 정책 의 한 축으로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세종시에 스마트팜이 운영중이고 매일유업이 고창군과 함께 상하목장을 농업테마파크로 개발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구체적인 국내 사례가 생길 조짐이다.

 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1월 일본의 주요 농촌 체험농장을 방문했다. 많은 농장이 있지만 대도시를 끼고 연간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농장들을 선정하여 조사했다. 오사카 근교 미에현의 모쿠모쿠 농장, 도쿄 인근사이타마현의 사이보쿠 목장, 지바현의 마더 목장이 그 대상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으며 성공의 비결은 무엇이었는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이나 위기는 무엇인지, 앞으로의 새로운 도전과 비전에 대해 농장 경영진과 심도 깊은 대화시간을 가졌다. 체험농장의 지존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모쿠모쿠농장의 경우 연매출 50억엔, 방문객이 50만명, 회원이 5만명에 이른다기에 에버랜드처럼 넒은 테마파크인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방문해보니 농장 부지는 넓었지만 하나하나의 건물이나 시설이 매머드급은 아니였다. 표지판하나에서부터 프로그램운영, 농장안의 레스토랑메뉴, 가공품의 품질, 숙소관리 등이 디즈니랜드 직원들이 배우러 올 정도로 깨알 같은 디테일과 스토리가 있는 아담하고도 정겨운 농촌테마파크였다. 이곳의 시설 하나하나를 감탄하며 둘러보고 체험하던 중 안개가 걷히듯 마음이 정리되었다.

 첫째, 모쿠모쿠 농장은 엄밀히 말하면 단순한 농업의 연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1차 생산을 하던 농업인이 가공을 하고, 체험프로그램을 덧붙이는 식으로 단순히 진화한 것이 아니었다. 고도의 기획력과 마케팅 전략, 디자인 역량, 금융기법 같은 도시의 DNA가 대거 투입되었다. 실제로 모쿠모쿠, 사이보쿠, 마더 목장의 임직원들은 전통적으로 농사를 지어온 농민이라기보다는 도시 출신들이었다.

 이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주었다. 농업의 6차산업화를 통한 융복합화는 사람 즉 ‘주체의 융복합화’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우리나라 농민들이 일본에 견학을 다녀와도 이런 수준의 체험농장이 만들어지지 못한 이유가 설명되는 느낌이었다.

 둘째로, 이들 체험농장은 농업을 소재로, 농촌에 기반을 두고 만들었지만 단순한 농업이 아닌 복합적인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모델을 따랐다. 자연과 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가치를 깊은 통찰로 풀어냄으로써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가 제시한 고도의 미래형 ‘하이컨셉’ 비즈니스 모델을 실현해 낸 것이다.

 사람들은 콘크리트 빌딩 속에서 하이테크를 누릴 때보다 자연에서 믿을 수 있는 건강한 음식을 먹을 때 가장 깊은 즐거움을 맛본다는 것에 철저히 집중하고 최고의 생산품과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이들이 제공하는 ‘경험의 품질’은 단연 최고다.

 농장에서 먹을 수 있는 육가공 제품이나 하우스맥주 등은 햄과 맥주의 본 고장인 유럽의 대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할 정도로 품질이 우수했다. 농가레스토랑의 돈까스는 동경의 최고 일류식당에 비해 품질이나 서비스, 그릇하나에 이르기까지 손색이 없다. 화장실의 청결함은 특급 호텔 수준이다. 촌이라고 촌스러운 건 하나도 없다. 이리 보고 저리보아도 사지 않거나 먹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다. 내가 쓴 돈의 가성비에 대한 확실한 ‘납득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저성장 가운데에서도 이 목장들은 불황을 모른다. 농업이 미래성장 산업으로 탈바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끝으로, 이번 탐방에서 만난 또 하나의 즐거움은 도쿄 시부야의 츠타야서점이었다. 이 서점의 창업자인 ‘마스다 무네아키’는 최근 가장 많이 언론에 회자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서점을 복합문화의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이곳은 도시인들에게 가장 쾌적하고 기품 있는 놀이공간이자 쉼터이다. 한번 가면 몇 시간이고 머무르고 싶은 곳. 츠타야서점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다 문득 ‘모쿠모쿠’와 ‘츠타야’는 쌍둥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미에현 산속의 모쿠모쿠농장이나 도쿄 시내의 츠타야서점은 두 곳 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최고로 디자인된 공간의 즐거움을 '제안'하는 놀랍도록 비슷한 DNA를 갖고 있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UI)만 각각 농촌과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 본질은 같았다. 사람들에게 최고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농촌다움과 도시다움의 덕목이 합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매력 있는 삶의 터전이 되기 위해서는 농촌과 지역이 변해야 한다. 농업이 고도화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반드시 주체와 역량의 융복합화가 절실하다. 도시가 가진 ICT와 디자인 역량을 제대로 연계하고 활용하기 위해 귀농귀촌을 보다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이나 자본의 농촌개발 참여도 무조건 금기시 할 것이 아니라 일정한 범위 내에서 참여를 허락하고 다양한 협업을 모색해야 한다. 건축과 예술 분야를 연계해도 좋을 것이다. 다양한 주체가 지혜와 역량을 모아 나갈 수 있도록 거버넌스에 대한 진지한 모색을 해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이건 단순한 농업 농촌의 문제가 아니라 고령화와 시장개방이라는 위기에 처해있는 농촌, 2000만 명에 육박하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이들에게 삶과 일의 터전이 되어주지 못하는 도시, 이 문제들을 함께 풀어낼 소셜 디자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20년 안에 도시와 농촌은 새로운 국면에 진입한다. 지금 우리는 농촌의 변화에 우리 모두의 미래 삶이 결부되어 있는 줄 모르고 골든타임을 보내고 있다.

  ● 하이컨셉 High Concept: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가 제시한 개념. 하이컨셉은 인간의 창의성과 독창성에 기반한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출과 실현능력이다. 하이터치는 하이컨셉의 성공적 구현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인간의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는 것,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 등을 의미한다.

● 지적자본과 제안: 츠타야서점의 창업자 마스다 무네아키에 따르면 어떤 상품이든 용도만 충족되면 되었던 '퍼스트 스테이지'와 상품을 전달하는 플랫폼이 중요했던 '세컨드 스테이지'를 지나 이제는 수많은 상품과 플랫폼이 넘쳐나는 '서드 스테이지'에 와있기에 단순히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서드스테이지'에는 기획을 통한 ‘제안’ 능력이 중요하며 그래서 기업은 기획과 제안을 통해 고객 가치를 창출하고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고객의 취향을 이해하고 제안하는 능력-지적자본-이 무기이며 그러한 능력을 가진 기획자(디자이너)만이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