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J 연구위원 지성태
(서울대 국제농업기술대학원 교수)

 2022년 시작과 함께 ‘농촌진흥’이 북한 관련 이슈로 부각됐다. 지난해말에 개최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우리식 사회주의 농촌 발전의 위대한 새시대를 열어나가자’란 제목의 보고를 통해 ‘농촌진흥’ 전략을 제시했다. 이는 과거 추진됐던 농업·농촌 정책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농촌진흥’을 강조한 배경은 무엇인가?

먼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대북제재 장기화에 따른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이번 전략 의의를 ‘엄혹한 난국을 주체적 힘으로 강화국면으로 반전’하는 것으로 명기한 대목에서 이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북한은 봉쇄로 인해 외부로부터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원 동원 여지가 남아 있는 농촌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역사적으로 산업화와 경제위기 국면에서 농업·농촌 부문은 언제나 인적·물적 자원을 조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둘째, 주민의 식습관 변화와 생활여건 개선에 부응하기 위함이다. ‘농촌진흥’ 주안점 중 하나가 바로 주식을 감자와 옥수수에서 쌀과 밀가루로 전환하는 것이다. 식량작물 외에도 축산물·과일·채소 등의 생산 목표도 제시했다. 이는 그동안 감지되던 북한 주민의 식생활 변화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적극적 대응이다. 북한은 현재 100만t 이상의 곡물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식량 수급전략 수정은 향후 북한 농업구조 변화를 예고한다.

셋째, 과거 성공적으로 추진했던 사회주의 농촌 건설의 경험을 소환함으로써 체제의 안정과 주민의 결속력 강화를 도모하고자 한다. 이번에 제시한 ‘농촌진흥’ 전략은 1964년 김일성 주석이 발표한 ‘사회주의 농촌문제에 관한 테제(강령)’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북한 경제발전 수준이 남한을 능가했다는 점에서 이번 전략 제시는 체제 우위와 물질적 풍요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주민의 자신감을 고취하고 국가 동원력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사실 ‘농촌진흥’은 상당수 국가의 당면과제 중 하나다. 성패는 결국 각 국가 실정에 맞는 전략 수립과 이행에 필요한 자원 동원력에 좌우된다. 이런 점에서 최근 농업·농촌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은 농업·농촌·농민 이슈를 모두 포괄하는 소위 ‘삼농문제’ 해결을 위해 2005년부터 ‘사회주의신농촌 건설’을 추진했고, 2018년부터는 ‘향촌진흥(鄕村振興)’ 기치를 내걸었다. 그 결과 식량 증산으로 식용곡물 자급률 100%를 유지하고 있고, 2020년에는 빈곤문제가 기본적으로 해소된 ‘소강사회(小康社會)’ 실현을 선언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 성과 배경에는 중앙정부의 강한 추진력과 막대한 재정 투입이 있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은 중국과 같은 고투입 방식 ‘농촌진흥’ 전략은 무리가 있다. 지역이 보유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지속가능한 저투입 방식 등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화학비료와 농약 등 투입재의 자체 공급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경축순환농법, 자연농법, 작부체계 개선 등 저투입 농법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런 저투입 방식은 초기 효과성이 낮고 안정화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북한 ‘농촌진흥’ 전략 성과를 높이기 위한 하나의 선택사항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생산성 증대를 위해 고투입 방식에만 의존해온 남한 농업·농촌 부문에서도 지속가능한 저투입 방식 확산을 위한 논의가 더 활발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