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J인스티튜트 이사장 이정환

최근 우리가 온통 쌀 생산을 줄이고 가격은 유지하는 방안에 정신을 파는 사이 우리의 밥상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이를 알아채서일까, 국민의식조사 결과 소비자의 61%가 현재와 같은 식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정부는 곡물자급률을 높인다는 목표를 농정의 단골 메뉴로 하고 있고, 현실은 번번이 빗나갔다. 2012년에 곡물자급률을 30%로, 2017년에는 다시 32%로 높인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2021년 자급률은 20.9%로 떨어졌다. 올해 발표한 계획에서는 목표 수준을 낮추어 27%를 제시했지만 달성할 수 있을까?

식량안보는 곡물자급을 넘어 국민 밥상을 지키는 문제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농지면적은 99평으로 세계에서 가장 적다. 이스라엘 100평과 비슷하고 네덜란드 320평, 노르웨이 562평, 인도 713평, 중국 1120평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2018년 OECD 통계) 이 적은 땅에서 곡물자급률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까? 농지면적이 수십년간 감소했는데 이를 다시 늘릴 수 있을까? 그에 앞서 곡물 27% 자급이라는 목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실제로 해외공급망이 무너지면 73%가 부족한데 20% 자급 상황과 무엇이 다를까? 곡물 재배에 충분한 보조금을 주어 채소 과수 재배면적을 줄이고 곡물자급률 목표를 달성한다면 과연 식량안보가 더 튼튼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세계식량정상회의(World Food Summit)는 식량안보를 '모든 사람이 항상 각자의 식습관과 기호에 맞는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충분한 먹거리(food)를 물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조달해 건강하고 활발한 삶을 이루는 상태'라고 규정했다. 식량안보란 곡물을 넘어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먹거리를 항상 적정한 가격에 조달할 수 있는 상태를 보장하는 것, 다시 말하면 각자의 밥상을 지키는 일이다. 그런데 밥상은 그 지역의 기후와 풍토, 생산기술이라는 공급조건과 오랜 식습관이 만들어낸 문화다. 그래서 농산물 수입 차질로 밥상이 무너질까 우려하는 소비자는 35%임에 비해 국내산 생산이 부족해 가격이 폭등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소비자는 77%였다.

요컨대 식량안보는 곡물자급의 문제가 아니라 농업의 본질적 기능이고, 농정의 첫째 목표는 국민의 밥상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기에 유럽연합(EU)은 출범 당시부터 식량안보를 가장 중요한 농정목표라고 선언했고, 세계 최대 농업 수출국인 미국도 미국인의 건강을 지키는 농업을 농정목표로 규정했다.

농업이 국민의 밥상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소비자가 원하는 농산물을 생산해 보통 소비자가 지불하려는 가격에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시장이 결정하고, 시장을 통해 발견된다. 전문가도 아니고 정부도 아니다. 그래서 EU는 농업 생산성을 높여 적절한 가격에 충분한 식량이 공급될 수 있도록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스위스는 연방정부가 농업이 시장 수요에 따라 지속가능한 생산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결국 국민의 밥상을 지키려면 생산성을 높이되 시장수요에 따라 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식량안보는 시장수요를 충족하는 농업생산으로 달성되며, 시장 친화적 농업정책 그 자체가 식량안보 정책의 핵심이다.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곡물은 필요한 만큼 비축하여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식량안보의 또 한 축이다.

시장 친화적 농업정책 그 자체가 식량안보 정책의 핵심

그런데 우리나라 농업은 2000년대 초부터 식량안보가 정말 위태로워지고 있다. 곡물자급률이 낮아져서가 아니다. 2000년대 들어 과일, 채소 등 소비자가 원하는 대부분 농산물의 실질가격은 상승하는데 재배면적은 줄고 휴·폐경지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보통 소비자가 원하는 농산물 예를 들면, 국내산 고추와 마늘, 한우고기를 시장에서 사 먹기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소비자 밥상을 지키려면 농업경영체가 영리적 동기로 소비자가 원하는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 정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가 논의해야 할 시대적 화두다.

[출처: 내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