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J 시니어이코노미스트  최지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여파로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반군이 작년 11월 이후 홍해 인근을 통과하는 상선에 공격을 가하면서 글로벌 물류에 큰 타격이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 물동량의 약 30%가 경유하는 수에즈운하 항로의 안전에 위협이 지속되자 글로벌 해운사들은 대부분 아프리카 희망봉 쪽으로 항로를 우회하고 있다.

희망봉을 경유하면 홍해 경로보다 약 9000㎞를 더 항해해야 한다. 운송 기간은 최소 7일에서 최대 30일까지 늘어난다. 이로 인해 화물 1t당 약 10~15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일부 선박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차라리 전쟁보험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종전과 같이 홍해 경로를 이용하고 있는 배경이다. 글로벌 물류 채널의 혼란이 길어지면서 우리 정부는 수출 업체에 대한 수출 바우처 물류비 지원 한도를 상향하는 등 대책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물류비 지원은 수출을 하는 중소·중견기업에만 해당되고 수입 물류에 대해서는 지원이 없어 정책 효과가 제한적이다.

식량자급률이 20%에 불과한 우리나라는 다양한 경로로 매년 곡물 1800만t을 수입하고 있다. 이 중 식용으로 사용하는 밀, 콩, 옥수수 등은 약 500만t에 달한다. 그중 옥수수 200만t이 가공식품에 널리 사용되는 물엿이나 포도당과 같은 전분당 제품을 만드는 원료로 쓰인다. 세계 옥수수 주요 생산 국가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병해충에 강한 유전자변형(GM) 종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유전자변형을 하지 않은(non-GM)' 옥수수는 생산 지역이 한정돼 있어 물량을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다. 국내 전분당 제조업체들은 GM 옥수수에 대한 국민 우려 등을 고려해 전분당용 옥수수 약 200만t 중 120만t은 유전자변형을 하지 않은 옥수수로 들여오고 있다. 이런 옥수수의 주요 생산지는 동유럽과 흑해 지역에 국한돼 있어 수에즈운하와 홍해를 통과하는 항로 이용이 경제적이다. 그러나 이번 후티반군의 공격으로 수입 물류에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만약 수에즈운하가 장기간 봉쇄돼 GM이 아닌 옥수수 조달이 불가능해진다면 식품업체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전분당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식품업체 조업이 중단될 수도 있는 문제여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례를 보면 2022년 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일시적으로 곡물의 국내 반입이 어려워지면서 사료업체들이 가동 중단 위험에 처하게 되자 정부는 민관 수급대책회의 등을 통해 해결 방안을 도출한 바 있다. 요소수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2023년 11월 중국이 우리나라에 대해 요소 수출 통제에 나서자 요소수 대란을 막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는 민간기업들에 물류비용 일부를 지원했다. 중국 대신 베트남, 중동 등으로 수입처를 다변화할 경우 운송비 포함 비용이 10~20% 증가할 수 있어 정부가 물류비 일부를 지원했다.

정부는 단기적으로 국내 물가 안정과 식용 곡물의 수급 안정성 제고를 위해 동유럽에서 국내로 반입되는 식용 곡물에 대해 항해 리스크가 많은 운송 항로를 회피할 수 있도록 권고하는 한편 물류비 일부를 보전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기적으로는 수입 식용 곡물에 대한 비축제도 운영도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