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nJ 농정전략연구센터 소장  고영곤

바츨라프광장의 기념비, 우리는 어디에 한 송이 장미를?

  아무튼 ‘인간의 얼굴’을 추구했던 ‘프라하의 봄’과 소련 군사들이 점령한 바츨라프 광장이 우리에게 1980년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했던 ‘서울의 봄’과 이를 무력진압 한 광주 금남로를 연상시킨다면, 역시 이 광장에서 이루어진 벨벳혁명은 1987년 민주세력의 요구에 시민들이 합류하여 자동차 클락션으로 얻어냈던 서울의 6.29선언을 연상시킨다. 아마도 한국인들이라면 체코 민주화의 현장, 피와 눈물과 한으로 얼룩졌고, 마침내 인권과 자유와 민주를 쟁취했던 역사의 현장 바츨라프 광장에서 금남로의 함성과 절규 그리고 태평로의 클락션 소리를 들을 것이다  

  프라하 구시가지를 향하여 바츨라프광장이 시작되는 거대한 건물 국립박물관 앞에는 체코의 전설적 영웅 바츨라프의 웅장한 기마상이 프라하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고, 그 앞에는 후사크 정권하에서 짓밟혔던 프라하의 봄에 소련 군대에 저항하여 분신자살한 젊은이 2명의 얼굴을 새긴 조그만 기념비가 있다. 1948. 11.8 일과 1950.3.7일에 태어나 1969년 1월과 2월, 약관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청년들의 기념비 앞에는 붉은 꽃이 놓여있었다. 참으로 애잔하고 콧날이 시큰했다. 그 거대한 소련과 공산주의 정권과 군사력을 앞세운 폭력 앞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맨몸뿐이었던 프라하의 대학생들, 그들은 그 어린 나이에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고, 피를 토하듯 자유와 민주와 인권에 대한 불같은 열망을 외치며 숨을 거두었으리라. 체코인들은 세계의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바츨라프 광장에 그들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비를 세워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꽃을 바치며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1975년 유신헌법의 허구성과 독재정권 타도를 요구하는 양심선언을 하고 할복자살 했던 서울 농대학생 김상진, 1987년 ‘턱하고 책상을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경찰청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

열불나는 세상이 물속에 잠겼다

우리 아이가 익사했다

뜨거운 정열과 불타는 의지가 물속에 잠겼다

우리 아이는 대학 3학년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다 그만

짐승의 발톱에 물려 죽었다

우리는 분노한다

 이 시대의 인간임을 포기하고 싶다(후략)

  박종철’이라는 제목의 이런 시를 남기고 시위도중 경찰의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자유화를 위해 꽃다운 나이에 저 세상으로 떠난 수많은 젊은이들의 묘비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한 송이 꽃을 바칠 곳은 어디인가. “너희가 바친 소중한 생명과 흘린 피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꽃으로 피어났는가, 우리의 아들들아. 아마도 우리는 너희의 이름조차 잊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구시가지 광장의 후스 기념비,‘진리는 승리한다.’

 우리는 피곤한 다리를 끌고 광장 끝 구시가지와의 연결부문에서 박물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마로니에 가로수 밑 벤치에 앉아, 광장의 수많은 인파를 보며 자유와 평화의 의미를 곱씹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의 바츨라프 광장에는 두툼한 털옷을 입은 사람, 반소매 반바지 차림의 젊은이, 다양한 모양의 청바지 차림, 갖가지 색깔의 피부와 머리털을 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바쁜 걸음을 재촉하기도 하고, 여유롭게 카메라를 들고 바츨라프 광장의 역사와 프라하의 문화를 감상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얀 백발의 노인들이 빙 둘러 서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기도 하고 젊은 연인들이 반쯤 껴안은 자세로 사랑을 나누기도 하였다.

  진정 자유와 평화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듯 했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우리는 1475년에 세워진 화약탑, 지금부터 2백 2십년 전인 1787년 모차르트가 ‘돈조반니’를 처음 무대에 올렸던 오페라하우스 등을 둘러보고, 100년 전에 건축된 호화로운 은행 건물의 점포에도 들어가 보면서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으로 갔다.

 구시가지 광장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현지인인지 관광객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복작거려 평화롭고 활기찬 모습이다. 광장의 한편에는 구 시청사탑이 있고 거기서 광장 건너로 80m높이의 쌍둥이 첨탑이 아름다운 틴 성당(Tynsky Charm)이 보인다. 좌우로 여러 건축양식의 건물들이 광장을 삥 둘러 에워싸고 있다.

 구시청사 탑의 좌측으로는 관광용 마차들이 줄지어 서있고 광장 중앙에 루터의 종교개혁운동보다 100년이나 앞서 교황청과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며 사회개혁을 부르짖던 카를대학 총장 얀 후스(Jan Hus)상이 세워져 있다.

 얀 후스의 기념비는 텔레비전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애인을 만나기 위해 쪽지를 붙여놓는 장면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수공사 관계로 틴 성당의 첨탑부분과 후스의 상이 일부 천막으로 가려져 있어 다소 아쉬움을 느끼면서 체코 역사에 참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친 후스의 이야기를 들었다.

 1372년 보헤미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얀 후스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카를대학에서 공부하였다. 당시 이 대학은 프라하를 중부 유럽의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로 끌어올릴 정도로 유럽 굴지의 명문이었다. 이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스는 곧 이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29세에 철학부의 학장이 되었으며 37세에는 총장이 되었다. 이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그 만큼 인정받는 뛰어난 학자였음을 나타낸다. 후스는 종교개혁의 원조로 불리는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였던 위클리프(John Wicliffe, 1320-1384)가 쓴 교회 비판을 읽고 이를 성서와 함께 체코어로 번역하는 동시에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었다. 

  그는 “크리스천들이여 진리를 찾으라,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리를 배우고 사랑하라.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행하라.”고 외치며 당시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 등 도덕적 해이를 비판하는 설교를 하였다.

   당시 교회는 세속화되어 수도원과 사제들은 많은 토지를 소유하여 부를 향유하고 성직자들은 세금을 거두어들여 이를 분배 관리하였으며, 온갖 특권을 향유하면서 백성을 착취하였고 교회 내부의 분열과 반목도 나타나고 있었다. 여기다가 당시 종교적으로는 로마 교황청의 영향력 아래 있었고 고위 성직자나 지배관료는 독일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상황에서 보헤미아 지역에서는 민족의식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후스는 성직자들과 교육받은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라틴어 미사 대신 민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민족어 미사여야 함을 강조하면서 생동감 있고 설득력 있는 체코어 설교로 대중을 매료시켰고 보헤미안들의 열정적 지지를 받았다. 당시의 교회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은 그의 개혁적인 주장과 성서해석이 교회의 권위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오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교황청은 1410년 후스의 모든 교회활동을 중지시켰고 1413년에는 후스를 파문하였으나 그는 대학과 일부 지지 세력에 힘입어 더욱 강렬하게 비판과 개혁을 외쳤고 후스의 파문에 반대하는 보헤미아지역 주민들의 소요도 지속되었다.

  후스는 화형대에서 뜨거운 불길에 휩싸이는 마지막 순간에 “나는 지금 거위처럼 불에 타 죽지만 백조 같은 인물이 내 뒤를 따르리라.”고 외쳤다. 그래서 100년 후 루터가 종교개혁을 외칠 때 사람들은 루터를 백조로 불렀다. 후스는 오늘날 체코 국민에게 단지 종교 개혁을 부르짖은 신학자로서만이 아니라 민족의식에 불을 붙인 지도자로서 그리고 사회개혁 운동가로서 존경받는 인물이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세워진 이 기념비는 진리를 배우고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지키라고 외치다가 화형당한 후스 서거 500주년을 추도하기 위해 1915년에 세워졌다. 후스는 비록 짧은 생애를 화형장의 불속에서 마쳤지만 그가 간직했고 외쳤으며 실천했던 후스주의 정신은 체코민족의 역사 속에 면면히 흘러 훗날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외친 프라하의 봄과 벨벳혁명으로 이어져 내려왔을 것이다. 그의 기념비엔 체코어로 “진리는 승리한다.”고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