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1세기에 왜 농업인가?(3)  

1-3. 농업의 딜레마

농업은 태양에너지를 농축하여 사람에게 전달하여 생명을 유지하게 하고 삶의 질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대체 불가능한 산업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농업은 나무를 베어 숲을 농지로 만들었다. 육지를 덮고 있던 숲이 사라졌다. 지금도 매년 아마존 정글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옥수수와 대두 등을 심는다. 우리나라에서는 70년대 대대적인 야산 개발로 나무와 수풀로 덮였던 많은 산지가 농지로 바뀌었다. 그 자리에 콩, 고구마, 고추를 심고 수박밭, 포도밭을 만들었다. 야산만이 아니라 강원도 등지의 높은 산기슭 나무를 베어내고 고랭지 채소를 심었다.

이들 작물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잡초라는 이름으로 다른 식물을 뽑아내고 해충이라는 이름으로 곤충을 제거한다. 수분 공급과 양분보급을 위해 물과 비료를 투입한다. 이 모든 행위는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교란한다.

더욱이 병충해와 잡초를 방제하기 위해서 농약을 투입한다. 목표로 하는 병해충과 잡초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동식물과 토양 미생물에 위해를 가한다. 하천으로 흘러들어 어류 등 수변 생태계를 위협한다. 식물체에 잔류하고 토양과 수변에 오래 남아 사람의 생명을 위한 농업이 도리어 사람의 건강과 생명까지 위협하는 역설에 이른다. 드디어 농업생산을 희생하더라도 환경과 생태 훼손을 줄여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이대로는 농업이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1980년대 중반 유럽과 미국에서 지속 가능한 농업, 환경농업, 저투입 농업(LISA: low input sustainable agriculture)이 농정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 미국과 EU 농업이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시행한 정책적 노력에 대해서는 김한호, “미국 농업환경정책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시선집중 GS&J」253호, 2018; 김태연, “EU 농업환경정책은 어떻게 발전하여 왔는가?”「시선집중 GS&J」251호, 2018 참조.

여기에 기후변화문제가 인류의 시급한 문제로 부상하였다.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제로 수준으로 낮추지 못하면 지구 기온 상승으로 자연환경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농업과 그 생산물을 가공하여 사람에게 전달하는 식량 시스템이 세계 총 탄소 배출량의 34%를 배출한다고 한다 (남재작,“탄소중립, 농업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까?”「시선집중 GS&J」290호, 2021 참조).

농업은 인간의 생존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요 불가결한 산업이지만, 생태환경 교란과 기후변화로 인간의 삶의 질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농업이 공익적 산업?

농업이 생태환경을 보전하고 공기를 정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말하지만 그런 기능은 초목이 우거진 자연 상태의 숲에 결코 미치지 못하므로 농업의 존재 이유가 되기 어렵다. 숲속의 나무는 대기 중의 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어 탄소 농도를 조절하고 동물이 숨 쉴 수 있게 한다. 땅속의 양분(무기질)과 수분을 흡수하고 태양에너지를 농축하여 생산된 나뭇잎과 열매는 수많은 곤충과 동물에게 안식처와 먹잇감을 공급한다. 그리고 남은 부분은 땅에 떨어져 다시 무기질과 탄산가스로 분해된다. 이를 흡수하여 다른 나무가 자라난다. 자연의 양분순환이고 탄소순환이다(그림 1-2). 여물어가는 벼가 물결치는 황금벌판, 잘 자란 배추밭이 그리는 초록 비단결 산기슭, 곳곳의 독특한 농업풍경이 아름답다. 그러나 형형색색의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야생 동물이 뛰놀고 있는 풍경보다 반드시 더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림 1-2. 숲의 탄소, 물, 양분 순환

농업은 태양에너지를 농축하여 인간에게 전달하는 필요불가결한 산업이므로 환경·생태교란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기와 토지, 하천과 해양의 생태·환경 또한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고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이것이 농업의 원초적 딜레마이다.

그런 교란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 어떻게 인간에게 에너지를 공급하고 먹거리에 대한 욕망을 채우는 본원적 기능을 수행하면서 탄소와 양분순환을 복원하여 생태·환경 보전과 탄소배출 감축이라는 제약조건을 만족할 것인가? 농업과 농정의 근본적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 한국농업의 모습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 어떻게 그 모습이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인가? 누가 그런 농업을 담당할 것인가? 이를 위해 정부는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식물공장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대형 식물공장에서 상추, 토마토, 사과, 쌀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 올까? 논밭은 숲으로 되돌아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