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nJ 농정전략연구센터 소장  고영곤

구조개혁의 아픔, 공무원 감축과 관공서 매각

  헝가리의 국토면적은 9만3천 km²로 우리 남한보다 약간 작지만 산이 많지 않아 경지면적은 우리나라의 3배쯤 된다. 게다가 인구가 1천만 명 밖에 안 되고, 취업자 가운데 농업의 비중도 우리나라보다 낮은 5.5%로 약 21만 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농업종사인력 1인당 평균 농지면적은 약 22ha 수준이다. 주요 농작물로는 밀 옥수수 해바라기 사탕무 등이 있으며 양돈 양계 낙농 등 축산도 활발하다.

우리나라와의 교역은 지난해 우리가 헝가리에 약12억 달러규모의 공산품을 수출한데 반해 수입은 2억 달러 남짓이었다고 한다. 1차 대전 때 오스트리아와 독일편에 합류하여 패전국이 됨으로써 결국 ‘트리아농조약’으로 국력이 쇠락했다. 2차 대전 때는 빼앗긴 국토를 되찾을 미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독일의 압력에 의해서였는지 모르지만 다시 나치 편에 섰다가 전쟁이 끝나는 순간, 소련군의 점령으로 반세기동안 공산화되어 있었던 헝가리 경제는 침체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국 국무부가 2006년 기준으로 추정한 자료에 의하면 오늘날 헝가리의 GDP는 1,752억 달러로 우리나라의 약 1/6수준이다. 인구가 약 1/5수준이기 때문에 국민 1인당 평균 GDP는 우리나라보다 30%가량 낮은 상황에 있고, 실업률도 7.4%로 매우 높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 틀림없다.

  2004년 EU회원국이 된 헝가리는 아직도 재정적자와 인플레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정부의 17개 부처를 12개로 축소하고 공무원 수를 23%나 감축하는 동시에 정부의 불필요한 관공서등을 매각하는 대대적인 구조개혁계획을 발표하였다. 공무원 4명 중 1명꼴에 해당하는 감축 그리고 관공서의 매각을 추진한다는 계획은 어쩌면 사회주의 체제의 유산을 정리하고 시장경제체제로의 본격적인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민간주도의 경제, 시장 지향적인 경제체제로의 전환은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때로는 희생과 고통이 불가피한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헝가리는 노벨상을 많이 받은 나라 가운데 하나로 인구가 1천만 명인데 지금까지 13개의 노벨상을 받았다. 4명이 노벨 화학상을 받았고, 물리학과 생물학 분야에서 각각 3명, 그리고 경제학상 문학상 평화상을 각각 1명씩 받았다. 특히 과학부문의 노벨상을 많이 받은 이 나라에서는 약품 특히 비타민이 관광객에게 인기를 끈다고 한다. 우리는 지난 6월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간 한국타이어의 현지 공장이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바라며, 24시간도 안 되는 1박 2일의 부다페스트여행을 마치고 슬로바키아로 가기위해 버스에 올랐다.

글루미 선데이(우울한 일요일)

  부다페스트를 빠져나온 버스는 북으로 국경을 넘어 슬로바키아를 향해 출발하였다. 가이드는 예닐곱 시간 걸리는 버스여행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틀어 주었다.

 ‘사랑과 죽음의 노래(Ein Lied von Liebe und Tod)’라는 부제가 붙은 부다페스트에서 벌어진 사랑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그 주제곡에 얽힌 실화로 더욱 유명하다.

 영화는 1차 대전이 끝나고 러시아는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 혁명을 거쳐 본격적인 사회주의 건설에 나서는 한편, 자본주의 국가는 1920년대 말부터 시작된 대공황을 겪는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시작 된다.

  2차 대전 발발로 독일이 헝가리를 점령하고 나치가 유태인들을 골라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는 와중에서 미모의 여성 일로나와 일로나의 연인인 자보와 언드라스, 일로나를 짝사랑하는 독일인 한스가 엮어가는 이야기이다.

  부다페스트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유태인 자보와 종업원인 여주인공 일로나는 연인 사이이다. 두 사람 사이의 뜨겁고 감미로운 사랑은 곧 갈등과 고통의 시련을 맞는다. 무명의 피아니스트 언드라스가 레스토랑에서 연주를 하게 되면서 단숨에 일로나와 사랑에 빠지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자보는 끝내 그녀와의 사랑을 버리지 못하고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다.”는 유명한 명대사로 고통스럽고 간절한 사랑을 선언하면서 한 여인과 두 남자는 기묘한(?)사랑을 공유한다.

한편 어느 날 레스토랑의 손님으로 왔던 한스는 일로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결혼해 줄 것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하고 그 좌절감으로 세체니 다리에서 다뉴브강으로 뛰어든다. 자보의 손에 의해 구출 되었던 한스는 얼마 후, 유태인의 생사여탈권을 지닌 독일군 장교가 되어 나타난다. 일로나를 둘러싼 세 남자, 두 연인 자보와 언드라스 그리고 그녀를 짝사랑하는 한스 사이의 사랑과 질투 그리고 긴장이 이어진다.  

   언드라스는 일로나를 향한 사랑의 열정으로 그녀의 생일선물로 ‘글루미선데이’를 작곡하여 연주하게 된다. 이 곡은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흘러나가 언드라스는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 글루미 선데이를 들으며 자살하는 사람들 소식이 이어지자 충격과 슬픔에 빠진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흘러가는 다뉴브 강물에 악보를 던지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연인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일로나를 또 다른 연인 자보는 위로한다. “언드라스는 최소한의 자기 존엄성을 지킬 수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 그러나 일생을 살면서 마주치는 그 수많은 모욕감을 우리는 자기 존엄성으로 치유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렇다. 인생은 자기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때로는 견딜 수 없는 모욕과 상처를 이겨내고 고난과 비극을 극복하며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한편, 아우슈비츠행 기차를 타야하는 자보를 구해달라는 일로나의 애절한 요청으로 자보 앞에 나타난 한스는 갈등한다. 기차 옆에 말없이 서서 서로를 바라보던 두 남자 자보와 한스. 그러나 한스는 자신의 사랑을 거부한 일로나에 대한 복수심으로 끝내 자보의 불행한 운명을 외면해 버리고 만다.

 아우슈비츠행 기차에서 한스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자보의 눈빛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일로나를 향한 사랑과 추억, 한스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 아우슈비츠와 나치에 대한 공포와 분노, 삶과 죽음 그리고 자기존엄성…. 그 설명할 수 없는 눈빛을 타고 고혹적이고 신비로우면서도 애잔한 피아노 곡 ‘글루미선데이’의 선율이 흐른다.

평생 죄책감의 볼모가 되어 살았을 한스는 노인이 되어 자보의 레스토랑을 찾아와 글루미선데이를 청해 듣다가 젊은 날 자신이 찍어 선물 했던 일로나의 사진을 바라보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숨을 거두는 장면으로 시작된 이 영화는 그렇게 깊고 깊은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헝가리에는 아직도 자보의 그 레스토랑이 있다 한다. 너무도 감미롭고 신비로운 피아노곡 ‘우울한 일요일’은 실제로 1930년대에 발표된 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면서 자살을 했고, 결국 영국의 BBC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방송국들이 이 곡을 방송금지곡으로 지정한 적도 있다고 한다. 영화는 그보다 훨씬 뒤에 만들어 졌고, 이 곡의 작곡자 세레스(Rezso Seress)마저 1968년 투신자살함으로써 그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은 신비의 깊이를 더해 주었는지 모른다.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 사랑과 질투, 픽션과 논픽션 그리고 삶과 죽음이 뒤섞인 몽롱한 상념을 싣고 버스는 동유럽의 들판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