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GS&J 회원회 회장이신 윤여임 대표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구시가에서 빠져나와 세계의 지붕이라고 지리시간에 배운 파미르 고원과 그곳에서 가장 높은 카리쿠리 호수를 찾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카리쿠리 호수는 설산을 비추는 보석 같은 호수라고 하는데 날씨까지 좋으니 금상첨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우리는 난관에 봉착을 하고 말았다. 카리쿠리 호수로 가는 길은 험한 곳이라 검문소를 설치하고 있었는데, 엊그제 내린 비로 도로가 유실 된 곳도 많은데다 산사태가 우려되어 통행을 제한하고 있었다. 검문소에서 공안들은 외국인을 67명이나 태운 버스를 통과시키는데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다.

  이곳을 통과하기 위해 미리 여권을 거두어 필요한 절차를 거쳤는데도 중국인 운전기사들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서약이 있어야만 통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미 우리가 천산대협곡을 다녀나온 직후 물난리 때문에 수백 명의 관광객들이 고립되어 있었다는 뉴스를 가이드선생으로부터 전해들은 터였다. 한동안의 설왕설래 후 급기야는 50mm정도의 비를 폭우로 분류해 놓은 재해관련 극비문서를 버스로 가져왔다. 그제서야 사막기후의 특이성을 이해 한 우리는 버스를 돌려 오의탁극진(奧依托克鎭)의 빙천(氷川)을 보러 갈 수 밖에 없었다.  

   먼지가 씻긴 천산산맥을 따라 백양나무가로수와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고, 유구한 세월을 흘러온 늙은 산맥 아래 물은 편리한 곳을 따라 골이진 곳은 어디든 강을 이루어 흐르고 있었다. 얼마를 가다 선명한 무늬가 있는 홍산을 머리에 이고 백양나무가 앞뒤로 늘어선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사람이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얼마나 사소한 것인가 입가에 절로 미소가 돌았다.

  버스는 다시 빙천을 향해 달렸다. 하늘과 구름, 산맥언저리에 소심한 듯 박힌 작은 식물들, 때로 홍토가 길바닥에 넘쳐흐르는 진창에서 버스가 헉헉대기도 했으나, 산맥을 배경으로 멀리 유리알처럼 투명한 하늘아래 만년설이 보였다. 지구상의 언어를 다 동원해도 모자랄 장엄함과 아름다움, 억만년을 이어왔을 그 영원한 장관을 마주하며 내 빈약한 어휘력과 가난한 상상력이 부끄럽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해발 2,800m의 고지에 위치한 빙천이 가까워 오고 있는 것인지 초원이 보이기 시작하고 산허리에도 식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깎아지른 듯한 산에 눈꽃처럼 하얀 송이들이 점점이 박힌 것은 자세히 보면 느릿하게 움직이는 양떼무리였다. 사람이 손길이 닿았다는 강한 증거로 전신주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소와 말, 나귀와 양들을 방목하는 모습이 보였다. 옥수수와 해바라기 사이로 노랑 씀바귀 꽃이 피어 초록과 묘한 대비를 이루는 길을 조금 지나면, 연보랏빛 지칭개가 무리를 지어 피어있는 장관이 이어졌다. 바람은 비단결 같은 초원을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빙천이 가까워 오자 산허리에 원추형의 침엽수림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600m 고지인 제 2주차장에 내려 200여m정도를 탈것에 의지하거나 걸어가야 했는데, 말은 30위안, 오토바이는 10위안의 요금을 내야했으나 이구동성으로 오토바이운행은 금지되어야 한다고 말들을 했다. 그 청명한 골짜기에 오토바이 소음과 매연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고 보행자들을 위협하였기 때문이다. 흑갈색 봉우리 위에 사막의 생명줄인 만년설이 모래시계처럼 허리가 잘록한 모양으로 흘러내리다, 고산기후로 주춤거려 형성된 빙천의 거대한 얼음덩이는 마치 석탄광산처럼 검었다.

  다행히 고산병 증세가 없이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데 나귀고삐를 잡은 소년 옆에 선 남성의 주머니에서 나는 휴대전화 소리가 고산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끈질기게 여기까지 따라 온 전봇대의 공이 큰 것 같다. 오토바이와 휴대전화, 이 산골짜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문명의 이기에 묘한 감정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