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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07.05
제목
[북유럽여행기9] 뭉크의 ‘절규’를 만나다 
첨부파일
 

이 여행기는 GS&J 회원회 회장이신 윤여임 대표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윤여임의 2012 북유럽여행기(9)  

 

 

 

뭉크의 ‘절규’를 만나다  

   

 

   버스는 오슬로(하느님의 초원이라는 뜻)를 향해서 달렸다. 노르웨이는 북쪽으로 가는 길이란 의미, 즉 North와 Way가 이루어진 뜻인데 터널과 호수가 매우 많은 게 특징이다. 터널은 길이도 만만치 않아 걸핏하면 한동안을 어둠속에서 차가 달리곤 했다. 톱니같은 이파리에 붉은 열매가 가득 달린 마가목이 많았고 자작나무숲도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실의 시대’로 번역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의 원제가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노르웨이 숲은 더 각별하게 다가왔다.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은 젊은 세대들의 원색적인 욕망과 슬픈 상실의 갈등을 다룬 책으로서, 비틀즈(존 레넌 작사)의 유명한 노래를 상징적으로 원용했음을 하루키는 책에서 밝히고 있다.

 

 

  정말 자작나무가 많았다. 노르웨이 숲을 보니 북쪽이라 그런지 자작나무가 우리나라처럼 크지는 않았는데 하얀 나무줄기가 줄지어 늘어선 야트막한 산을 옆에 두고 달리던 버스가 호숫가에 정차를 했다. 웬일인가 싶었는데 버스기사 로니의 배려였다. 로니는 키가 크고 늘씬하며 매우 신사적인 사람이인데, 야트막한 구릉을 배경으로 하늘을 안은 잔잔한 호수를 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화롭고 안온한 풍경이었다. 우리는 내려서 스트레칭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간 곳은 오슬로 국립미술관이다. 노란 장미와 붉은 장미와 일년초 꽃들이 화려한 입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곳곳에서 느끼는 것인데 우리나라 초가을 날씨같으면서도 햇살이 강하지 않은 탓인지 꽃이 피기가 가장 적절한 시기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꽃들은 최상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뭉크(E. Munch,1863 ~ 1944)의 ‘절규’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관이 여럿으로 나뉘어져 있는 미술관은 사진촬영이 허용되었으나 뭉크관 만은 예외라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눈을 크게 뜬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

  

 

 

 뭉크의 공황발작이라는 개인적 체험에서 탄생했다는 ‘절규’

 뭉크는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해질 무렵 두 친구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어느 순간 애상적인 기분이 들며 우울해졌다.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그 순간, 극도의 피로감이 나를 덮쳐와 걸음을 멈추고 난간에 기댔다. 그리고 피처럼 붉은 하늘에 드리워진 구름과 암청색 도시, 피오르드에 걸쳐진 칼을 보았다. 친구들은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고 나만이 두려움에 떨며 홀로 제자리에 서있었다. 그때 나는 대자연을 관통하는 강력하고 무한한 절규를 들었다. 나는 진짜 피 같은 구름이 있는 이 그림을 그렸다. 색채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뭉크는 절규를 여러 개 모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뭉크관 정면에 작은 크기의 ‘절규’는 강렬하게 시선을 붙잡는다. 그것은 예술적인 감각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아는 만큼 보인다는 사실 때문이리라. 뭉크의 그림에 드리운 정서는 비극적이고 암울한데도 불구하고 이미지가 둥글둥글하게 표현되고 선이 굵은 탓인지, 비극적이면서도 가파르지 않고 편안한 감정 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에 사로잡혀 한동안을 그대로 서있었다. 미술관을 떠나기 전에 뭉크관에 한 번 더 들려서 다시 못 볼지도 모를 그 그림에 작별인사를 하였다.

 

  조그맣게 나누어진 전시실에는 익숙한 그림들이 참 많았다. 고흐의 자화상과 모딜리아니, 마네, 모네, 르노와르의 그림들, 미술교과서에 나왔던 그림들이 있어 마치 예전에 와 보았던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 나라는 참 부자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또한 학교 다니면서 내내 쓸데없는 군더더기 과정으로 생각했던 미술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게 해준 중고등학교 미술시간이 고맙게 느껴졌다. ‘마네, 모네, 세잔, 고흐’를 외우게 했던 선생님은 시골학교 미술선생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 도회지 깍쟁이 같은데다 기본적으로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이었다. 근근이 먹고 살기도 벅찼던 시절, 미술관, 박물관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시골 중 ․ 고등학교에서 기본 소양으로서 갖추어야 할 미술 상식을 익히게 해준 미술시간의 감사함을 사십년이 지나 오슬로 미술관에서 느낄 줄을 어떻게 알았던가!! (뭉크의 ‘절규’ 이미지와 관련내용은 네이버를 참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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