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J인스티튜트 이사장 이정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갈등이 뜨겁다. 정부는 일본이 안전 기준을 충족하는 조치를 했으므로 방류에 반대하지 않되 감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위험성을 강변하고 정부와 여당은 이를 괴담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다수가 방류에 반대하고 수산물 안전성을 우려한다고 답해 앞으로 수산물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민의 이런 생각이 과학적 인지 부족 때문일 수도 있고 괴담의 영향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전성 문제는 과학적 기준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국민이 안전하다고 믿어야 한다. 믿지 않으면 갈등이 초래되고 관련된 상품 시장은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민은 새로운 위험일수록, 잠재적 위험이 불확실할수록, 자신의 선택으로 회피하거나 통제할 수 없을수록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신뢰 얻으려면 정부가 앞장서 안전성을 선언해서는 안돼

그래서 선진 각국은 위험을 과학적으로 평가하고 이에 따라 위험을 관리하되, 이 모든 과정에서 국민과 소통해 믿게 한다는 원리를 따른다. 소통은 과학적 정보를 공유할 뿐만 아니라 과학적 위험평가와 정책결정 과정에 국민이 참여함으로써 정부의 안전성 시스템을 신뢰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가 갈등과 혼란을 초래했던 것은 국민의 참여가 부족해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국민은 안전성에 관한 과학적 판단을 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결국 위험성 평가와 관리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안전성에 대한 믿음을 결정한다.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얻기 위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정부가 앞장서 안전성을 선언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정부에 대한 신뢰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방대한 원전 오염수를 처리하지 않을 수 없는 다급한 상황에서 2020년 해양방류 조치가 안전성 기준을 충족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국민의 50%가 방류를 반대하는 가운데 다음해 4월 방류를 결정하고, 올해 7월 방류를 위한 모든 설비와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발표해 모든 과정이 일본의 필요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편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한 가운데 일본에 대한 정부의 말과 행동이 우리나라 원전 오염수 안전성 평가 시스템을 의심하게 했다. 더욱이 여당은 일본의 방류 결정 이후 이를 반대하는 주장을 괴담으로 비난하며 방류의 절대적 안전성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의 의심을 키웠다. 과학도 인간의 인지능력이므로 오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절대적 안전성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안전성 평가와 관리는 확률적 판단이다. 1980년대 영국에서 광우병이 대량 발생했을 때 과학자와 영국정부는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0년이나 지난 1996년에 사람에게도 전염될 수 있음이 밝혀져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최근에는 소주와 막걸리, 여러가지 식품의 감미료로 쓰이는 아스파탐도 발암가능물질임이 밝혀져 우리를 놀라게 했다.

잠재적 위험 완전 배제 어렵다면 '사전예방 원칙' 따라야

따라서 '사전예방원칙'이 필요하다. 그 선택의 결과가 불확실하지만 잠재적 위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면 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유럽연합(EU)이 유전자변형(GMO) 농산물과 성장 호르몬을 사용한 쇠고기 생산과 유통을 제한하는 것도 바로 이 사전예방 원칙에 따른 것이다. 이 원칙을 따르지 않으려면 그에 따른 이득이 위험을 감수할 만큼 커야한다. 예를들면 코로나 백신도 불확실하지만 심각한 부작용의 위험이 있으므로 사전예방 원칙에 따라 거부해야 했다. 그러나 코로나 감염에 따른 손실이 너무 분명하고 크므로 대부분 나라에서 백신을 채택하되 개인의 판단에 따라 거부할 수 있게 했다.

대규모 원전수 방류는 아직 사례와 경험이 충분하지 않으므로 이 원칙을 채택했어야 한다. 정부가 이 원칙을 따르지 않고 방류에 반대하지 않으려면 그에 따른 편익에 대해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더구나 원전수 방류는 코로나 백신과 달리 개인의 선택이 불가능하므로 더 넓은 공감이 필요하다.

[출처: 내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