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J 연구위원 지성태
(서울대 국제농업기술대학원 교수)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양국의 관계는 대내외적 요인으로 인해 그 굴곡이 적지 않았다. 그 속에서 한국과 중국의 농업분야 협력은 기복을 같이하면서도 지속적인 발전을 이뤘다. 농산물 교역 규모만 보더라도 수교 초기 10억달러에 불과하던 것이 지난해엔 65억4000만달러로 증가했다.

한국의 중국산 농산물 수입액은 52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적자폭이 크게 확대됐다. 이처럼 중국 대상 농산물 무역의존도가 높아졌다는 것은 한국의 식량안보에 있어 중국의 역할 그리고 그로 인한 위험 요인이 모두 커졌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중국산 농산물 수입과 관련한 다양한 이슈가 표출돼 상호간의 갈등을 초래한 후 시간이 지나면서 봉합되는 양상이 반복됐다. 2000년 마늘분쟁 당시 중국이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입을 잠정 중단함으로써 국내 마늘농가가 그 피해를 온전히 감내해야 했다. 2005년 ‘기생충알 김치’ 파동은 국내 소비자들의 중국산 농산물 안전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2021년 ‘알몸 김치’ 파동으로 재현되기도 했다.

2008년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이 주도하는 물가상승)에 따른 중국의 갑작스런 수출 금지로 중국산 옥수수 수입에 의존하던 한국은 급하게 수입선을 전환해야 했고 올해 세계 식량위기 상황에서 한국은 주요 곡물 수입국으로 탈바꿈한 중국과 수입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돼 전체 농산물 품목 중 민감한 품목을 제외한 64%가 개방됐다. 그럼에도 FTA 체결로 양국 통상환경이 개선돼 중국산 농산물 수입이 유리해졌고 추가 개방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점은 한국 농업의 잠재적 위기 요인임에 틀림없다. 2017년 사드(THAAD) 배치를 계기로 한·중 관계는 냉각기에 돌입했고 양국간 농산물 교역도 한동안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배추·양파 등 국내 주요 작물의 작황 부진으로 생산량이 급감할 때마다 긴급수입 대상국 1순위는 바로 중국이었다. 이는 수급안정에 기여하는 한편 생산자의 이윤극대화에 반한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결국 한국 식량안보에 있어 중국의 역할은 양날의 검에 비유된다.

한·중 수교 이후 한국 농식품업계도 중국 대상 수출시장의 문을 지속적으로 두드렸다. 결과적으로 글로벌기업과의 경쟁과 중국의 ‘텃세’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한 상품도 있고 소위 ‘스타상품’으로 각광을 받은 경우도 적지 않다. 2000년대 초 전남 고흥 유자차가 농협을 통해 중국에 수출됐다. 국내산 농식품 가운데 최초로 중국인민대회당에 납품되고 수출물량이 급증해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국내 후발주자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현지 모방상품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그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중국의 ‘멜라닌 우유’ 파동은 국내 유제품업체의 중국시장 진출의 기회가 됐다. 중국 소비자들의 자국산 유제품에 대한 불신과 외국산 프리미엄 제품 수요 증가로 한국산 유제품의 중국 대상 수출이 증가했다. 그러나 서방기업들의 브랜드파워와 선점 효과로 인해 한국산 유제품이 중국 유제품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한국산 김치·삼계탕 등은 양국의 검역기준이 달라 중국시장 진입을 위한 장벽을 넘는 데 꽤나 고전했다.

 최근 중국 대상 수출 농산물 가운데 새롭게 떠오른 스타상품이 있다. 바로 <샤인머스캣> 포도다. 국내 소비자들의 선호도에 힘입어 재배면적이 급증하고 있고 중국 대상 신선농산물 수출을 견인하고 있다.

그러나 수출 호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가 관건이다. 국내 생산량이 증가하면 수출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한국 농가 간의 출혈경쟁이 불가피하고 중국에서도 재배면적이 폭증하고 있어 한국산 <샤인머스캣>의 프리미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호황을 그나마 연장하기 위해선 철저한 품질관리와 출하시기 조절 등 세밀한 전략이 필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과 중국의 농산물무역 갈등은 제3국에서 초래되기도 했다. 2010년대 초 중국산 <신고> 배가 한국산으로 둔갑해 미국시장에 유통됨으로써 한국산 배 수출을 위협했다. 이는 한국산 품종이 중국으로 유출돼 비슷한 환경에서 재배됨으로써 품질 또한 유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K(케이)-푸드’ 열기에 힘입어 신선과일을 포함한 한국 농식품의 해외 진출이 활발한 상황에서 한국산으로 둔갑한 중국산 농식품에 대한 경계를 더욱 강화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2010년 전후 식량 수입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해 중국은 식량 순수입국으로 전환됐다. 2021년 기준 식량 총 수입량은 1억6000만t에 달하고 그 가운데 콩을 제외한 주요 곡물의 수입량은 6800만t이다. 이는 세계 식량 교역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매우 커졌음을 방증한다. 지난해 중국은 전면적 ‘샤오캉(小康)사회’ 건설을 실현했다고 대내외적으로 선언했다. 1990년 7억5600만명에 달하던 빈곤인구가 모두 가난에서 탈출했다는 것이다. 중국이 명실상부한 중등국가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경제발전 수준, 국제사회에서의 정치·외교적 영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과거 대비 중국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에 협력파트너에 대한 기대치도 그에 상응하여 높아졌을 것이다. 실제로 2000년대만 하더라도 중국은 지리적 접근성, 문화적 동질성 등의 이유로 한·중 농업협력에서 매우 적극적이면서 우호적인 자세를 취했다. 예를 들어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농촌개발 경험, 농업협동조합 운영원리, 선진적인 통계·검역시스템 등 한국의 농업부문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며 관련 노하우와 기술 공유를 원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역과 경제수준을 불문한 많은 협력파트너를 보유하고 기술격차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파트너로서의 한국의 입지가 많이 좁아진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양국 농업분야의 새로운 협력관계 설정이 요구된다. 먼저, 중국 농산물시장을 한국의 식량안보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한다. 현재 중국은 미국에 이은 한국의 2대 농산물 수입 대상국이고 일본에 이은 2대 수출 대상국이다. 한국과 중국의 농산물 무역구조는 장기간 유지될 것이기 때문에 중국을 농산물 공급기지인 동시에 수출시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다만 중국 농산물시장의 대내외적인 위험 요인에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둘째, 중국의 농식품 수급상황에 대해 철저히 모니터링한다. 향후 글로벌 농식품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중국측 유관기관과의 정보 네트워크와 공동 위험대응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

셋째, 전통적 협력부문에 대한 한국의 비교우위를 부각시킨다. 중국이 전면적 샤오캉사회 실현의 성과를 확대하고 농촌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향촌진흥’ 전략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선진적인 농촌개발 경험과 노하우 전수를 위한 협력을 제안한다.

넷째, 민간부문의 농업분야 협력을 더욱 장려한다. 민간부분은 자본·기술 혁신역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농업부문이 당면한 문제의 솔루션을 탐색하고 혁신적 발전을 선도하기에 유리하다. 다만 이러한 협력이 민간부문의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온전히 공공부문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농업분야 협력공간을 국제사회로 확장한다. 한·중 양국은 모두 농업분야의 외연 확대를 위해 농기업의 해외 진출, 해외원조 등의 전략을 수립해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협력방안을 도출해 실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