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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03.08
제목
[이정환의 겨울산골 살기 2] ‘고메똥골’ 사람들 
첨부파일
 

* 이정환 이사장의 겨울 산골 살기 두번째 에세이입니다.

 

 

「이정환의 겨울산골 살기 2」

‘고메똥골’ 사람들

   

 

GS&J 이사장 이정환

 

 

곰배령은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화도읍에서 양양고속도로를 타고 서양양까지 한 시간 20분, 그리고 418번 국도를 따라 30분 정도다. 지도를 보니 418번 국도 조침령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고 굴곡이 심해 보였다. 눈이 쌓였거나 날씨가 추워 블랙 아이스라도 있으면 꽤 위험할 것 같아 걱정했다. 그러나 눈은 잘 치워져 있었고, 한낮에 맞춰 일정을 잡았으므로 날씨는 영상이었다. 요새는 어디를 가도 길이 잘 뚫렸고 제설은 잘되어있다.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다시 든다. 다행히 중턱에서 조침령 터널이 뚫려 이를 가볍게 지나니 곰배령이 있는 진동리이다. 작년 머물렀던 영월 산골흙집은 진등길이었는데 이름이 묘한 인연이다.   

 

멋진 ‘고메똥골’ 황토방

 

도착한 곳은 ‘고메똥골’, 산비탈을 따라 지은 정말 말 그대로 황토방이다. 내가 묵을 방은 세평 정도의 작은 원형에 한쪽이 부엌이다. 벽은 황토 그대로이고 바닥은 삼베다. 내가 어렸을 때 친구 집에 가서 나지막한 흙벽돌 집, 벽지 없는 흙벽을 보고 정말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천장은 굵은 통나무 서까래를 둘러치고 쐐기목을 박아서 아치형으로 멋을 냈다. 이보다 큰 황토방에 셋이 더 있고, 주인집까지 모두 다섯 채다.

   

 

 

 

방 한쪽에 나무 색깔 그대로인 작은 테이블이 눈길을 끈다. 예약할 때 노트북 작업을 할 테이블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만들어 드리죠‘ 라고 했다. 나를 위해 특별 제작한 것이다. 그 재주에 놀랐다. 그런데 나중에 주인 남자의 안내로 맨 윗집 뒷문을 열고 들어가서 깜짝 놀랐다. 온갖 장비와 도구가 갖추어진 목공소였다. 그는 목수 뺨치는 목공 기술자였던 것이다.

   

’고메똥골‘ 다섯 채를 부부 힘으로 지었다.

 

그가 분당에 살며 직장에 다니던 시절 여행을 좋아했다. 우연히 이곳 곰배령에 왔다가 꽂혔다. 그리고 횡성에 갔다가 황토방을 발견하고 꽂혔다. 목공을 배우고 황토방을 짓는 데도 쫓아다녔다. 드디어 2004년부터 이곳에 아내와 둘이서 황토방을 짓기 시작했다. 그때는 아직 곰배령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이곳은 거의 집이 없었다. 주말마다, 설 추석 연휴마다 마침 친구 공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을 데리고 와서 황토방을 지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주말 알바여서 기꺼이 나섰고 임금은 쌌다. 나무 다듬는 일을 모두 직접 했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가르치며 서툰 솜씨에 주말에만 짓다 보니 몇 년이 걸려 지금 목공소가 있는 방 두 개짜리 첫 집을 완성했다. 거기에 기거하며 집짓기를 계속했다. 프랑스와 영국, 덴마크에 딸과 같이 여행 갔을 때는 목공 관련 전시회를 수소문해 찾아갔다. 그리고 황토방의 싱크대와 밥상, 문고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가 디자인하여 나무로 만들었다. 황토방은 모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고풍스러운 원목 작품으로 채워졌다. 셋째 집을 다 지은 2010년 펜션을 열었다.

그는 아직 재직 중이었으므로 주중에 손님이 올 때는 이 산중에 부인 혼자 와서 해냈다. 그 열정과 용기가 놀랍다. 2013년 퇴직하고 이곳으로 이사해서 10년이 된다. 그 사이 곰배령이 MBC 다큐 ’곰배령 사람들‘에서 야생화 천국으로 세상에 알려지고, 조침령 터널이 뚫려 양양에서 50분 거리가 되었다. 방문객이 줄 잇고 펜션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지금은 각양각색으로 지은 펜션이 60여 개나 된다.

 

 

 ’고메똥골‘의 비밀

 

곰배령이 야생화로 유명한 생태보전지역이어서 봄부터 가을까지는 펜션 숙박객이 많지만 추운 겨울에는 대부분 손님이 적다. 그러나 ’고메똥골‘은 겨우 내내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황토 온돌방이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의 이곳 겨울을 더 따뜻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가 그 옛날 황토방을 선택한 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것일까. 아침저녁 온돌 아궁이에 장작을 때고 높이 세운 굴뚝에서는 연기가 솟아오른다. 방바닥은 정말 뜨끈뜨끈하다. 황홀하다고 할까, 뭐랄 수 없는 느낌에 젖어 든다. 온돌의 맛을 모르고 자란 우리 아이들이 와도 나 같은 행복감이 있을까? 필경 어린 시절, 이 뜨끈뜨끈함에 대한 느낌을 내 몸이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느낌을 잊고 지냈으나 몸에 와 닿는 순간 다시 살아난 것 아닐까. 그 후 따끈한 온돌에 대한 느낌이 그리워 침대 있는 진부령 펜션에서도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눕곤 했다.

그러나 황토방이 이 집만은 아니다. 손님이 끊이지 않는 다른 비밀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관광지 같은 모습이 질색이에요. 산골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려고 해요.” “다들 펜션 이름을 멋지게 지었지만 우리는 ‘고메똥골’이란 촌스러운 이름이죠. 옛날 이곳에 곰이 많이 살아 포수들이 ‘곰의 똥이 많이 보이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고메똥골’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거다 싶었죠.” “우리는 손님을 돈으로 보지 않아요. 설사 100억이 생기더라도 여기서 살며 두 채는 펜션을 계속할 것 같아요.”라는 말이 손님이 많은 이유를 다 설명하는지도 모른다.

 

 

손님이 퇴실하면 부인이 이불을 한 아름 안고 토끼처럼 뛰어 올라간다. 그 발걸음이 정말 가볍다. 소풍 가는 초등학교 소녀 같다. 이불을 교체하는 잰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손님이 오면 이번엔 남편이 손님 짐을 들고 고라니처럼 겅중겅중 뛰어오른다. 즐겁게 일하는 것이다. 그래서 엄청 친절하다. 산나물 말린 것을 무쳤다고 나누어주기도 하고, 손님이 와서 돼지고기 훈제를 했다고 한 접시 갖다준다. 내가 필요하다니까 테이블을 만들어 주었으니! 장에 가는 날에는 필요한 물건은 대신 사다 주기도 한다. 이 산골에 황토집 다섯 채를 부부 둘이서 짖고, 때론 부인 혼자 산골에 와서 펜션을 지켰던 그 열정과 진심이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자생식물 반딧불이 연구회‘를 만들었다. 수소문하여 전문 교수도 두 사람 초대 회원으로 모셨다. 작년에는 마을회관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반응이 좋았다며 자생 야생화와 반딧불을 증식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돈 안 되는 짓을 하는 것이 부인에게 눈치 보이지만 ’가끔 보이는 반딧불에 환호하는 아이들이 조금 더 많은 반딧불을 불 수 있게 하고 싶다. 화려한 수입종이 차지해버린 우리 마당 한쪽에 토종 야생화를 심고 사람들이 그 은근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또 꿈을 꾸고 있었다.

그들의 치열하고 진지한 삶에 주눅이 든다. 작년 평창 진부 ’산골풍경‘ 주인에게 받았던 감동, 내가 왜소해지던 생각이 났다(산골여행 3). 내가 모르던 세상에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과감하게 인생을 걸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세상은 그렇게 넓은가 보다.

 

달집태우기, 이 평화로운 산골마을!

 

정월 보름날은 동네 부녀회에서 오곡밥과 나물을 만들어 마을회관에서 주민, 손님 다 같이 먹고, 달집태우기를 한다고 초대했다. 설날에는 떡국 모임도 했다며. 마을회관까지 1.5킬로를 걸어 조금 늦게 도착하자 남편이 현관 앞에서 손을 높이 흔든다. 마을회관은 이미 꽉 찼으나 자리 하나를 비집어 만들어 앉혀 주었다. 낯선 사람들과 좀 계면쩍게 인사를 나누는데 부인이 오곡밥과 뭇국, 나물 한 접시를 갖다주며 조금 일찍 시작해서 국이 식었다고 안쓰러운 표정이다.

달집태우기는 정말 장관이었다. 어릴 적 집 마당에서 볏짚에 불을 붙여 ’불도 무섭고 물도 무섭다‘고 주문을 외우며 달님께 절하던 기억이 전부인 나는 그 규모에 깜짝 놀랐다. 불길이 치솟고 불똥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아름답게 퍼진다. 한쪽에서는 마을 사람과 방문객이 어우러져 숯불에 삼겹살을 굽고 막걸리를 마신다. 온 세상이 눈에 덮여 안전하다지만 군 소방차가 대기하고 소방사들이 주변을 살피고 있다. 마침 보름달이 솟아오르고 순식간에 박수 소리와 절하는 모습이 좁은 마을회관 앞 광장을 채웠다. 온 세상이 정말 시끄럽지만 이 밤, 이 산골 마을은 정말 평화로웠다. 너무 좋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마을에는 자그만 체육관이 있다. 행사장으로 쓰기도 하지만 보통 때는 탁구대를 설치하여 마을 사람들이 게임을 하며 즐긴다. 강습 교사가 있어 렛슨도 받을 수 있다. ’고메똥골‘ 부부도 렛슨을 받고 있단다. 마을회관 바로 옆에 조그만 기린초등학교 진동 분교가 있다. 학생은 모두 여덟 명인데 이 중 네 명은 서울에서 어머니와 함께 유학 온 아이들이란다. 이들을 위한 빨간 지붕의 숙박시설이 학교 바로 옆에 있다. 이 산골 분교에 엄마와 함께 유학을 와서 자연을 만끽하며 여유롭게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아이들의 미래는 어찌 될까?

 

이 부부와 이 마을 앞에 편안한 나날이 펼쳐지기를

 

이 산골 동네가 곰배령 야생화로 유명해져 150여 호가 유지되고, 이런 공동 행사를 해낸다. 이 행사가 적막한 이 겨울 마을에 온풍이 불게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곰배령의 눈 덮인 겨울 모습이 야생화 못지않게 아름답다는 이야기가 펴져 나가고 있었다. 험하지 않아 아이젠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올라가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눈꽃의 장관을 볼 수 있단다.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산골의 멋을 간직하며 이 평화롭고 즐거운 모습을 이어가기 빈다.

분당 집을 팔고 와서 손해가 막심하고, 그렇게 좋아하는 여행 갈 틈이 없어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아내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서 안쓰러움이 묻어난다. 그러나 여기 땅값은 더 오르지 않았을까. 펜션 허가가 더 안 난다니 영업권도 상당하지 않을까. 그렇게 위로하며 치열하고 진지하게 살아온 두 부부 앞에 보람 있는, 그리고 편안한 나날이 펼쳐지길 빈다.  

 

(2023. 0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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